럭비, 럭비혼, 그리고...

럭비는 미식축구가 아니다

헬레나. 2002. 9. 16. 05:02

작년 이맘 때 난 YT였다. 개강 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YT훈련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이야기 줬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일을 향해를 처음 배울 때의 그 고통, 전력 달리기를 할 때마다 멈쳐버릴 것 같은 호흡, 깃발을 들고 있을 때의 손 떨림이 어떤 것인지.

 

드디어 기다리던 정기 고연전날. 단상 위에서 내일을 향해를 9번이나 했는데도 럭비는 졌다. 학우 여러분께 볼 면목이 없다며 그 큰 덩치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럭비부 선수들. 어깨에 어깨를 걸고 뱃노래를 부르는 그들에게 ‘연대생 우는 소리’는 응원곡 가사에 지나지 않았다.

 

고연전이 끝나고 자유광장에는 럭비부는 매번 지기만 한다며 차라리 럭비를 고연전 종목에서 빼자부터, 체육위원회는 럭비 선수를 그만 뽑고 럭비부를 없애자는 등의 과격한 글로 도배됐다.

그 글들을 읽던 중 럭비부 소속 한 선수의 리플이 한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로 시작되던 그 글은 열심히 할 때니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정과 관심 부탁한다로 끝이 났다.

 

그해 여름, YT라는 이유로 훈련을 받기 위해 녹지 운동장에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갔던 나는, 그 매일매일을 럭비부 선수와 함께했다.

 

Go! Go! 라고 외치며 스크럼을 짜고, 태클과 패스 연습을 하며 운동장 이쪽에서 저쪽까지 뛰던 선수들. 우리보다 더 까만 얼굴을 하고선 더 많은 땀방울을 흘리던 그들.

 

훈련이 힘들어 소위 말하는 뺑끼라고 칠까? 하는 안일한 생각일 들때마다 그들은 뒤에서 고대!를 외치고 있었고, 정기 고연전의 필승, 전승, 압승을 위해 그 더운 오후에도 아무 불평없이 묵묵히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어찌 그들을 잊을 수 있을까. 기합이라며 운동장 전력 달리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을 때, 울면서 뛰고 또 뛰는 우리들 바라보면서 박수를 치던 그 럭비부 선수들을. 힘내세요, 힘내세요, 하며 뛰는 우리들 얼굴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박수치며 응원하던 그들을. 그런 선수들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이런 고생 참아내고 이겨내서 정기전 때 그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단상에서 응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그 여름날 녹지 운동장에 애써 올라왔던 사람들이 아닌 이상은 아무도 모른다. 응원단 현단원이 하는 뱃노래가 얼마나 힘든지. 기수부 YT가 하는 내일을 향해가 왜 힘든지. 그리고 럭비부 선수들은 고연전 그날까지 얼마나 많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땀을 흘렸는지. 우리들 모두는 아무도 모른다.

 

며칠 전 고연전을 준비하는 5개 운동부 취재를 위해 송추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오랜만에 럭비부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찍기 위해 내가 온 시간은 낮 12시. 그들은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쉬지 않고 훈련을 했다.

 

운동이 끝난 후 선수들은 쩔뚝거리며 걸었다. '짜가발'(의족) 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하며. 태클을 하다 다친 어깨에 얼음을 얹고 테이핑을 하고 걷는 그들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나의 물음에 그들은 올해는 울면 안되죠, 라고 답하며 웃었다.이기면 단상 위에서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 때 보여줬던 싸이춤 보다 더 멋진 춤을 보여주겠다면서. 정기전에 온 모든 고대생들을 재미있게, 행복하게 해주겠다며 그들은 그렇게 웃었다.

 

작년 정기 고연전 때 친구들은 내게 럭비 선수들이 왜 어깨에 중무장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했었다. 본교 타 언론단체의 한 기자는 럭비 경기가 있던 날, 미식축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본교 홍보실에서 만든 마스코트 호롱이가 들고 있는 공은 미식축구 공이다.

 

이렇게 럭비와 미식축구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졌다는 사실에만 큰 의미를 부여하고선 그들을 욕했다. 정기전의 의미는 그것이 아닌데 말이다. 친선의 노래 가사처럼, 오늘 우리 만난 것이 얼마나 기쁜지 생각하며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 다음 문제로 보내야할 법임에도.

 

몇주 앞으로 다가온 정기 고연전. 올해 역시 잠실 주경기장에서 많은 사람들은 럭비공이 왔다갔다하는 것만 보면서 전광판에 올라간 숫자에만 신경쓰고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몇몇 무심한 고대생들에게까지 우리 선수들은 약속했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과 감동을 줄 것이라고. 그 감동은 지난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뛰던 남북한 선수들의 모습을 봤을 때보다 더 놀랍고 큰 감동이라고.

 

그 말을 믿으며 정기전을 기다려본다. 즐거운 고연전 그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