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

어느 낯선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길

헬레나. 2007. 11. 6. 17:31

 2년 전 어느 가을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날씨가 아주 맑았던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가을 풍경을 담기 좋은 딱 그런 날이었죠. 당시 모 신문사 사진부에서 인턴기자로 있던 제게 선배는 날씨도 좋은데 가을 정취나 담아보라는 취재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의 춘천행은 그렇게 갑자기 결정되고 말았지요.

 

‘아, 이 좋은 날 취재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투정 섞인 불만이 하늘을 찌를 무렵 춘천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바람에 온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던 코스모스 수백송이를 보자 어느새 제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소양강 위로 끝없이 쏟아지며 반짝이던 가을 햇볕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찰칵찰칵. 그때부터 정신없이, 또 쉴 틈 없이 셔터 버튼을 눌렀습니다. 눈앞에 펼친 풍경 전부를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죠.

 

서울로 올라가던 길, 제 옆 좌석에 놓인 카메라를 슬쩍 쓰다듬어보았습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요. 그 말은 곧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죠. 그런데 그 와중에 출발하기 전 맨 안전벨트가 불편하더군요. 마침 건널목 앞에서 신호대기로 차가 잠시 멈춰야 있어야만 했고 그때가 벨트를 다시 매기 위기 위한 최적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벨트를 푸른 그 3초의 시간이 훗날 제게 큰 영향을 미치고 만 시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뒤에서 과속으로 달리고 있던 트럭이 부딪히며 제게 준 충격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결국 목 디스크와 팔 골절상 때문에 그 후 6개월 동안 후유증과 싸우며 지내야만했습니다. 사진기자 일을 그만둬야했으며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습니다. 머리를 감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일도 제겐 사치였죠. 물론 세상엔 이보다 더 악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일-사진을 찍던-을 못한다는 사실은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교통사고 후유증이 무섭다고들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가더군요.

 

물론 지금도 몸이 완벽히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비가 오는 날은 연례행사처럼 통증과 싸워야하며 조금이라도 무거운 짐을 들라치면 목에서부터 아프다는 신호가 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못하겠다고 손을 내밀기보다는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번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티려고 합니다. 지난 주말도 그랬습니다.

 

그날 저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 댁에 한약과 음식들을 전해 드리러 가야 했습니다. 여행 가방에 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넣고 들어보니 끙, 하는 소리가 먼저 나더군요. 체중계로 재보니 정확하게 18.5kg이었습니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택시비를 제 손에 쥐어주셨죠. 그러나 저는 ‘여행 가방은 드는 게 아니라 끌고 가는 것’ 고로 ‘크게 힘에 부치지는 않을 것’을 강조하며 택시비를 다시 돌려드렸습니다. 택시를 타고 할아버지 댁까지 가면 대략 3만 4천 원 정도가 드는데 그 돈을 택시비로 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가야만 하는 순간도 있을 거라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지하 3층까지 내려가야만 했는데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바로 끙끙대며 가방을 들고 내려가야만 한다는 것이었죠. 할아버지댁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야만 했는데 그때마다 약 20kg 되는 짐을 들고 걷다 보니 또 다시 아프다는 신호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사고로 다쳤던 목과 척추 부분은 서서히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만 도와줄 수 있냐고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쉬면서 걸어 올라가면 충분히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힘을 내서가방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제게 다가와 가방 밑 부분, 그러니까 지퍼가 있는 부분을 잡더군요. 그래서 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씀드렸죠. “어, 가방 문 안 열렸는데요?”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 혼자 힘들지 않아? 같이 들면 쉽잖아. 내 도와줄게. 어여 가자고.”

 

지하3층에서 지하1층까지 할아버지와 저는 하나, 둘, 하나, 둘, 이렇게 함께 박자를 맞춰가며 계단을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근처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수라도 사서 드리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끝까지 괜찮다며 가던 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제야 저는 알게 됐습니다. 바로 할아버지의 걸음이 성치 않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다시 할아버지께로 뛰어가 가방 속에 있던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께 고마운 마음을 갚을 길은 지금 이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죠.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도와야지. 세상 혼자 사나. 꼭 거창하게 크게 도우지 않아도 돼. 그런 건 자신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거지. 그 사람에게는 큰 도움일 수도 있거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나서서 도우는 편이야. 그리고 고마우면 나한테 고마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도우면서 살아. 그게 제대로 갚은 거니까.”

 

할아버지는 그 말씀을 제게 남긴 뒤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문득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케빈스페이시와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열연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 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트레버’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요. “제가 3명을 도우면 그 1명이 또 다른 3명을 돕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은 아름답게 바뀔 거예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트레버는 알았지요. 그런 도움의 손길들이 쌓였을 때 세상은 비로소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요. 그렇기 때문에 그 같은 이론을 생각해낸 것이겠지요. 
 
동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할아버지는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셨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으셨죠. 그렇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미셨습니다. 그 점은 제게 많은 점을 시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참 부끄럽더군요. 조금이라도 목과 척추에서 아픈 기미가 느껴지면 ‘이 몸 쓸 놈의 교통사고 후유증!’이라 중얼거리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인 척 했던 제 모습이 진실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반성했습니다. 이웃을 외면한 채 혼자서만 살려고 했던 제 일상에 대해서도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요. 그리고 앞으로는 할아버지 말씀처럼 '아주 작은 손길일지라도 상대에는 소중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런 순간이 켜켜이 쌓였을 때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진심이라면 분명 이뤄질 수밖에 없겠죠.

 

할아버지께서 이 글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제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김규환 할아버지!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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