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

슈퍼맨 아빠, 고맙습니다.

헬레나. 2007. 11. 30. 22:49

매일 아침 아빠는 저와 함께 산책을 합니다. 아빠는 몇 년 전 당뇨병 때문에 한번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아빠는 늘 아침 해를 바라보며 혼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와 함께 걷습니다.

 

아빠는 걸음이 느립니다. 그렇지만 걸음이 느린 아빠에게 저는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너희 아빠는 어떤 분이셔?”라고 묻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말하지요. “응, 슈퍼맨이야”라고요.

 

10년 전 11월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스산했던 날이었죠. TV에서는 어두운 이야기만 나왔습니다.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 안방에서 아빠와 엄마가 다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방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 채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보내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야.”

 

그날로부터 몇 주가 흘렀습니다. 아차, 중요한 준비물을 놓고 왔네요. 할 수 없이 구원요청을 해야 했습니다. 공중전화로 달려가 집에 전화를 걸었지요. “지금 거신 전화는 결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하네요? 다시 천천히 집 전화번호를 눌렀습니다. 여전히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어떻게 집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냐며 놀려댔습니다. 그렇지만 7년 동안 썼던 전화번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럴 일이 있었어.” 갑자기 전화번호가 바뀐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엄마는 계속 둘러댔습니다. ‘그럴 일’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아빠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자꾸만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요. 그런 날이면 그들은 새벽에도 현관문이 부서질 정도로 쾅쾅 두드리며 소리 질렀습니다. 어떤 날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 사람들이 안 가면 학교 못가겠다, 라는 생각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밀린 임금을 주기 위해 아빠는 집을 팔아야했습니다. 결혼 11년 만에 내 집을 마련했다고 웃던 아빠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거실에 있던 피아노가 이제는 제 방에 있게 됐지요. 넓은 방이 생겼다며 깡충깡충 뛰던, 막 초등학교 3학년이 됐던 제 모습도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그 집을 아빠는 결국 팔아야만했습니다.

 

지하계단을 내려가면 곰팡이 냄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울만 있어.”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습니다. 새해 첫날, 온가족이 조그만 밥상에 둘러 앉아 엄마가 해주던 떡국을 먹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아빠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배부르냐? 먹지 마라.” 아빠는 내 앞에 놓인 떡국 그릇을 가지고 가서 쓰레기통에 버렸지요.

 

그렇게 겨울방학이 지나갔고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노래 부르던 2월이 왔습니다. 쏟아지던 아침잠과 싸우다 그날도 늦게 일어났죠. 화장실 앞에 울상인 동생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하수도관이 꽁꽁 얼어버린 것입니다. 할 수 없이 학교 화장실에 세면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 모습을 들키기 싫어 아침 일찍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덕분에 아침을 굶어야만 했지요.

 

그해 6월, 1학기가 끝나 가는데 왜 아직까지 등록금을 내지 않았냐며 제 머리를 때렸던 담임선생님도 생각납니다. ‘등교 정지 예고서’라는 게 있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6월 13일까지 등록금을 내지 않을 시에는 등교를 할 수 없습니다, 라는 내용이 적힌 종이였습니다. 하긴요, 담임선생님은 제가 처음 반장이 됐을 때부터 늘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하곤 했죠. 학교에 돈도 못내는 게 무슨 반장이냐며 말이에요.

 

이런 학교 안 다니는 게 낫다는 생각에 그 다음날 가출을 감행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건 그래도 학급 운영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걷고 있던 학급비 내역이 담긴 표와 돈을 부반장에서 줬다는 것이죠. 그래도 걱정이 됐던지 쪽지까지 써서 말이에요.

 

그때는 PC방도 없던 시절이라 저녁 늦게까지 교보문고 구석에 앉아 하루 종일 책만 읽었습니다. 저녁 9시. 폐점할 시간에 나와 잘 곳을 찾아 다녔죠. 하지만 학생 신분에 그런 곳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결국 아파트 계단에 앉은 채로 밤을 샜습니다. 새벽이 올 때까지요.

 

편의점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라면을 먹던 중 공중전화를 발견했습니다. 삐삐 음성이 가득차 있었기에 궁금한 마음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녹음된 메시지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학교에 오지 않으면 정학을 내리겠다던 담임선생님 목소리도 있었고 빨리 돌아오라는 친구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쓰러지는 모습 보고 싶냐는 엄마 목소리도 있었죠. 그리고 수화기를 붙잡고 울게 만든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아빠였습니다.

 

“너 찾으려고 새벽에 성당까지 갔는데 없구나. 어디 있니. 성당에도 없으면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아빠는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마다 성당에 가서 하루 종일 기도를 하던 딸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의 가출소동은 이틀이 채 안돼서 끝났지요.

 

아빠는 집에 돌아온 제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소처럼 똑같은 모습이었죠. 집을 잠시 비웠던 어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날처럼 말이에요. 방에 혼자 앉아있는데 불쑥 들어와 초콜릿을 주고 가셨습니다.

 

제 방황 역시 그렇게 한 순간에 끝났습니다. 아빠를 원망하던 지난날의 기록들을 태우며 말이에요. 내 주제에 무슨 대학이야, 라던 생각 역시 일기장과 함께 불탔지요.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보자. 그날 밤 혼자 결심했습니다. 별들이 반짝이던 여름밤이었습니다.

 

물론 고3시절은 순탄하게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돌발성 난청이라는 스트레스 질환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푹 잘 자고 일어났던 어느 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죠. 그저 스트레스 때문에 난청 증세가 왔다는 이야기만 했지요. 세상의 소리를 양쪽이 아닌, 한쪽으로만 들어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병원을 나와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파란불임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렸습니다. 그 소리마저 왼쪽 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지요.

 

“괜찮다, 꼭 낫게 해주마. 아빠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낫게 해주마.”

 

저녁노을을 등지고 있었기에 아빠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녁 하늘처럼 따뜻하게 바라봤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내 등을 두드려주던 손길과 내 손등 위에 포개져있던 아빠의 손끝은 무척이나 따뜻했으니까요.

 

“아빠, 왜 자꾸 열쇠를 잃어버려요.”

“그러게. 자꾸 왜 그러지. 소독약 때문에 그런가…”

 

그뒤 아빠는 부끄럽지 않는 아빠가 되겠다며 소독약 뿌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돈을 모아 햇볕이 보이는 집을 마련했고 대학 등록금까지 대주셨습니다. 모두들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아빠는 하나씩 하나씩 현실 속에서 이뤄내고 말았죠. 마치 슈퍼맨처럼 말이에요.

 

대학축구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아빠는 저와 함께 양구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딸과 데이트를 하고 싶다면서요. 그런데 햇볕 아래 서 있던 아빠는 무척이나 늙어보였습니다. “아빠, 할아버지 같아요!”라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꺼내자 아빠는 껄껄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아빠도 이젠 할아버지지. 63살이잖니.”

 

우리 아빠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셨나.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보자 아빠 말씀이 맞았습니다. 아직도 제 기억 속 아빠는 막 쉰을 넘은 그때의 아빠인데 어느새 환갑을 지나셨네요. 왜 나는 그걸 몰랐을까요. 그러고 보면 저는 늘 제 기준에서만 아빠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는 늘 당신 스스로가 아닌 자식인 제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이 글을 쓰고 있던 중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들른 부엌에서 아빠의 뒷모습을 봤습니다. 그 뒷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네요.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크고 건장했던 아빠는 이제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빠는 제게 하나 뿐인 슈퍼맨입니다. 당신의 꿈은 잊은 채 그저 자식들의 꿈만 생각하는, 그 마음에 나를 눈물겹게 만드는 아빠는 슈퍼맨입니다.

 

고마워요, 아빠.

그리고 사랑해요.

 

말하지 않아도 아빠는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아빠는 슈퍼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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