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 사랑

맞으면서 운동하는 선수들

헬레나. 2007. 11. 15. 04:34

얼마 전 고려대학교 아이스하키부에 일어난 사건을 아십니까? 학부모들이 대한체육회에 낸 진정서에 따르면 지난 해 9월 고대 아이스하키부 감독은 실업팀과의 평가전에서 지자 선수들을 숙소 뒤로 불러 낸 다음 기합을 줬다고 합니다. 다름 아닌 ‘입으로 과자 주워 먹기’였습니다. 당시 감독은 소주를 강제 먹인 뒤 안주로 과자를 먹게 했는데, 바닥에 뿌려진 과자를 손이 아닌 ‘입’으로 주워 먹게 한 거죠.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개”라고 소리치면서 말입니다.

 

현재 이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해외 전지훈련 때는 선수들을 집합 시켜놓고 술을 마시다 소주잔을 이로 깨뜨려 씹으며 협박했다는 선수들의 고백도 나왔습니다. 속옷만 입은 채로 베란다 밖에 세워놓기까지 했다네요. 그러나 감독은 “술을 먹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진정서를 낸 학부모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하네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확실히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순간에도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이런 환경에 노출된 채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성적지상주의’로 인해 끝없이 반복되는 기합과 구타에 시달린 채 운동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강요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선수들에게 있어 존중받는 삶이란, 또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은 단어인 듯합니다.

 

3년 전 여름을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주영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광양까지 내려갔습니다. 마침 그날은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저는 그렇게 스탠드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며 박주영 선수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고대 축구부와 경기를 치른 그 학교는 전반에만 2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 학교 감독은 그게 무척이나 화났던 모양입니다. 좀처럼 분이 삭히지 않은지 씩씩 대며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장 밖으로 나갔지요. 뭐 작은 연습구장 같은 곳에서 경기가 진행됐기 때문에 그들 모습은 제 시야 안에 있었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가 싶어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채 살펴보고 있었죠. 그때였습니다.

 

“이 새끼들아. 똑바로 하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감독은 축구화로 선수들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은 익숙한 표정으로 맞고 있더군요.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는지 고개까지 푹 숙인 채 말이지요. 그들에게 구타는 일상인 듯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맞았지만 2골 차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그들은 다시 그 장소에 모여 감독에게 맞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은 동그랗게 원을 만든 채 서있고 정 가운데 있던 감독은 그렇게 시계처럼 한 바퀴를 돌며 선수들을 때렸지요. 이번엔 축구화 대신 양 손을 이용해 따귀를 때리더군요.

 

아이스하키를 하던 제 친구도 생각나는군요. 대부분 사람들은 아이스하키를 돈 많은 집 아이들이 하는 운동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우선 운동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용품들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공이나 운동화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전지훈련은 늘 해외에서 이뤄지는 편입니다. 캐나다나 북부 유럽 쪽에서 전지훈련이 진행되는데 이때 드는 돈 역시 만만치 않죠. 장비들도 큼직하고 무겁기 때문에 그것들을 들고 대중교통수단을 탄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가면 대부분 차를 장만하거나 차가 있는 친구에게 신세를 지죠.

 

그러나 제 친구는 집이 어려웠답니다. 파출부로 일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운동을 했는데 어머니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비싼 장비 값을 댈 수 없었습니다. 당시 친구의 포지션은 골키퍼였습니다. 늘 혼잣말 식으로 골키퍼 장갑 하나 사는데도 수십만 원이 필요하다며 속상하곤 했죠. 결국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답니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갈 때 친구는 술집에 갔습니다. 술집에서 매일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쪽잠을 잔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 운동하는 날들을 반복했죠. 그러나 철인도 아닌 친구가 그런 생활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요?

 

한번은 졸린 잠을 결국 참지 못한 나머지 훈련 중에 졸고 말았습니다. 골문 앞에서 퍽을 기다리던 중 그 상태로 잠이 든 거죠. 그 모습을 발견한 감독은 “이 새끼야, 니 새벽까지 오락하다 지금 조는 거쟤? 하키채로 죽을 때까지 맞아본 적 있나?”라고 말하며 친구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결국 감독실로 불려간 친구는 하키채가 부러질 때까지 맞아야만 했지요.

 

그러나 며칠 전 만난 선수들은 그보다 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제게 들려줬습니다. 이제는 운동을 그만두었기에 조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가슴 속 이야기를 남김없이 제게 들려줬습니다.

 


 

“고등학교 때 제일 많이 맞았던 것 같은데 그땐 좀만 잘못하면 집합이었니까 2시간 머리 박은 채 야구빠다로 맞은 적도 있었고. 그때 완전 엉덩이가 다 잘 때도 엎드린 채 자고. 근데 저희 학교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제 친구네 학교는 게임도 못 뛰고 선생님한테 맞는 게 싫어서 가출하는데 나중에 잡히면 숙소에 선생님이 다시 못 도망가게 걔 가둬두고 쇠사슬로 묶은 채 며칠 째 밥도 거기서 먹게 하고. 제 친구네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에요. 그 선생님이 지금도 운동을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는데 또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는 목욕탕인가 거기서 옷 다 벗긴 채 선생님한테 얻어맞은 적도 있고. 숙소 이탈했다고 그랬대요. 고등학교 때.“

 

“운동부는 운동할 때 쓰는 용품이 다 무기에요. 야구부는 야구 빠다로 맞고 하키는 하키채로 맞고 축구부는 축구화 딱 때려서 머리 째지고 쇠뽕 있는 축구화 그거 얼굴에 날라차기로 때리면 며칠 동안 눈도 못 뜨고. 럭비부는 때릴 거 없을 거 같죠? 우승하면 우승기 같은 거 주잖아요. 그 깃대 끝이 대개 뾰쪽해요. 그걸로 때려요. 잘못 맞으면 머리 찢어지고. 운동부 애들 맞은 얘기 쓰면 영화 몇 편 나올 걸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그냥 선생님한테 뺨 몇 대 맞으면서 욕 좀 먹고 나중에 선배들한테 빠다 좀 맞으면 끝나는데 선생님들이 부모님 욕하면서 때릴 때는 진짜 좀 그런 게… 니 애미 애비 모아놓고 총으로 싸질러 죽이고 싶다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고… 그건 그나마 좀 나은 게 제 친구네 학교는 선생님이 칼 들고 나와서 오늘 경기 제대로 못 뛰면 이 칼 갖고 죽으라고 그랬다던데…”

 

“뭐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다 좋을 수는 없고 요즘은 그래도 예전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운동하고 있다고 그러는데 저는 이제 운동을 관뒀지만 지금도 운동하고 있을 제 후배들이 하나의 사람처럼 대우받으면서 운동했으면 좋겠죠. 걔네들이 뭐 기계가 아닌데 인간인데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죠.”

 

“음… 중학교 때 청소를 하는데 청소하다가 청소를 좀 깨끗하게 못해서 선생님이 불러놓고 안 좋은 표현으로 ‘핥아’라고 그러나? 그런 식으로 많이 그랬고… 일단은 맞는 부분에서는 각목을 맞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요, 여름 되면 비가 많이 오잖아요. 각목을 물에다 재워 담고 둬요. 그거를 그냥 마른 각목이면 한 10대 정도 맞으면 잘 부러지거든요. 그런데 물에 재워두면 잘 부러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재워두고 게임 지거나 잘못한 거 있으면 그걸로 맞는 건데 제가 그 각목을 4개나 부러뜨리도록 맞은 적이 있어요. 그 정도로 심 하게 맞아서 피가 터져서 앉지도 못하고 그냥 서 있지도 못하고 엎드려 생활하는 그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운동도 쉬면 ‘그렇게 맞았다고 운동 쉬냐? 부러지지 않는 이상 하라!’ 그래 가지고 운동을 안 쉬고 계속 해가지고 몸이 너무 심하게, 거의 병원에 치료받을 정도까지 그랬는데… 무엇보다 운동선수가 힘든 거는 음… 뭔가 운동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껴야하는데 강압적인 걸 많이 느낀다고 해야 하나? 그냥 자기가 즐거워서 해야 하는데 시키면서 하는 거. 이렇게 하라고 그러면 뭔가 자기가 개발적이고 창의성 있게 공을 차야하는데 뭔가 압박적이고 강압적인 그런 거가 많이 있어서 자기 발전을 많이 못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중학교 유도 선수가 코치 선생님한테 맞아서 엉덩이 피부가 거의 썩었잖아요. 심하게 표현하면, 숫자로 표현하면 거의 100대는 넘게 맞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걸요. 아니면 그 선수가 피부가 약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숫자로 따지면 일단 백대가 넘었을 거고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아니… 생각하기 힘들죠. 그 정도까지는. 아마 엄청나게 많이 맞았을 거예요. 그게 많이 맞아서 피가 밖으로 터지면 괜찮은데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러니까 제 경험 상으로는 피가 터진 상태에서 더 많이 맞아서 그 터진 게 안으로까지 파고 들어가는 바람에 그런 게 아닌가 해요.”

 

“쉽게 바뀌지 못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게 자꾸 대대로 내려오는 거 때문에 아닐까 싶거든요 그게 쉽게 바뀌지 못하는 게 위에 선배들 때부터 워낙 그런 게 너무 많이 배어있기 때문에 지금 쉽게 바뀌기는 힘들 것 같고 개선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있긴 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바꿔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는 운동을 그만둔, 그리고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믿기 힘들었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선수들은 맞으면서 운동을 해야할까요? 성적만 중요시하는 풍토 아래서 선수들은 언제나 승리만을 강요당합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피눈물 흘리며 올리는 좋은 성적은 결국 감독의 지도력으로 인정되고 맙니다. 성적 부진으로 언제 경질될 지 모르는 계약직 인생인 감독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또 없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감독들의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기합과 구타를 통해서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때려야지 말을 듣는다? 때리면 더 열심히 한다? 그것과 관련된 정확한 연구 자료가 있다면 한번 보고 싶군요. 실제로 상관관계가 있다면 네, 때리십시오. 그렇지만 손을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봅시다. 이것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선수들은 맞으면서 운동해야할까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는 이 악순환이 하루 빨리 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그들만의 춥고 배고픈 리그가 아닌, 진정 즐기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세상 속에서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인격적으로 대우 받으며 운동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운동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니까요.

 

추신) 학원 스포츠 내 폭력과 관련된 제보를 받습니다. 제보하신 분의 신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보장하겠습니다. 그늘 속에서 희생 당하는 선수들이 더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당신의 용기있는 한 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dreamdiary@hanmail.net으로 메일 보내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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