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ers

(동영상) 제용삼을 기억하세요?

헬레나. 2007. 5. 22. 12:32

 

 그는 기억력이 좋았습니다. 10년 전 제 모습을 잊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혼배성사를 올리던 날 제가 준 선물까지 기억하고 있더군요. 10년의 간극은 찰나에 불과한 듯 보였습니다. 제용삼 선수, 그에게는 말이죠.
 

 10년 전, 그러니까 1998년 4월 22일. 봄비가 흩날리던 구덕운동장에서 저는 처음 제용삼 선수와 만났습니다. 경기가 시작 된지 5분 만에 골에어리어 정면에서 오른발로 선취골을 올린 그는 후반 12분과 20분, 연속으로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그의 해트트릭을 보고 서울로 올라오던 길 혼자 다짐했죠. 유니폼 마킹은 꼭 제용삼 선수로 하겠다고 말이에요.
 

 1998년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유독 세 가지만 또렷이 기억납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이름 안양, 늘 같은 얼굴의 사람들이 있던 곳 레드존, 그리고 제용삼 선수. 그렇게 1998년은 그 세 가지만으로 점철된 해였습니다.
 

 아직 월드컵 특수가 있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안양 서포터즈 레드 치타스는 무척 소규모의 인원뿐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선수들도 자연스레 저희 얼굴을 익힐 수 있었죠. 그리고 제용삼 선수 역시 경기장에 도착하면 교복 위에 유니폼을 겹쳐 입고 “수퍼파워 안양”을 외치던 저를 시나브로 알게 됐지요.
 

 그 해 9월 27일이 문득 기억납니다. 하늘이 참 파랬던 무척이나 기분 좋았던 일요일 오후였죠. 오랜만에 제용삼 선수는 선발로 경기에 나섰고 홈에서 부산을 만난 안양은 연장전에서 백형진의 골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안양 서포터즈는 선수단 버스 쪽으로 달려가 기쁨의 박수를 선수들에게 보냈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 속에 함께 있었죠.
 

 선수들이 모두 버스에 올라탔을 때 저는 제용삼 선수가 늘 앉는 창가 쪽 자리로 갔습니다. 마침 그날따라 제용삼 선수는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할 때마다 모자챙은 버스 유리창에 부딪혔죠. 그러자 그는 모자를 벗은 뒤 창문 바싹 얼굴을 대고선 제게 “오늘 서포팅하느라 수고 많았어.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팬이었던 제가 좀 더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게 모자까지 벗어주던 그 배려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시간은 흘렀습니다. 1998년 시즌 역시 어느덧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지요. 11월 25일 FA컵 결승전을 마지막으로요. 사실 그날 저는 지독한 독감에 걸려 경기장을 찾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유독 그날따라 아파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경기장에 꼭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저는 결국 어머니 몰래 중무장을 하고 동대문운동장을 찾았지요. 그리고 칼바람이 뺨을 베던 그곳에서 저는 제용삼 선수가 2골을 터뜨리며 우승컵을 드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아, 그제야 알게 됐어요. 그 알 수 없는 의무감의 근원을요. 아마도 그 감격스런 순간과 함께 하라는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웃던 제용삼 선수의 얼굴과 무릎을 꿇은 채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세레모니까지, 나는 온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비록 어머니의 가위질 아래 찢어진 유니폼이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내 마음 속 영웅이 모두의 영웅이 됐던 순간을, 눈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날 이후, 열여섯 어린 소녀는 그가 뛰는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안양LG를 떠났다는 소식 역시 쉽게 믿지 못했죠. 후에 서울시청에서 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습구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멀리서 몸을 풀고 있던 그의 모습을 보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던, 2001년 8월의 어느 여름날이 생각납니다.
 

 그 때문에 서울유나이티드 개막전 전날, 저는 혼자 감상에 젖어있었답니다. “다시 뛰는 모습 볼 생각에 설레요.” 이제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제용삼 선수는 웃으면서 답했죠. “7년이나 지났는 걸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라는 선수를 아직도 잊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그 말은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던 걸요. 그라운드를 잊지 않고 돌아온 당신을 보며 저

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 수없이 할 뿐입니다. 당신 역시 그 마음을 잘 알고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돌아와서.

 


 

 

K3란?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만남!’ 지난 4월 21일 2007 K3리그가 개막했다. 올 시즌 첫 출범하는 K3리는 K-리그와 내셔널리그 참가팀들을 제외한 순수 아마추어 클럽팀들로 구성된 리그다. 서울유나이티드, 창원두대FC, 대구한국파워트레인, 양주시민축구단, 용인시민축구단, 은평청구성심병원, 전주EM코리아, 천안FC, 화성신우전자 등 총 10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전·후기 9라운드 씩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를 치른다. 이후 4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11월 17일과 24일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우승팀을 가른다. 서울(성인 1만원, 학생 5천원)을 제외한 모든 구장이 무료입장이다.

 

서울유나이티드 홈경기 일정
6월 2일 토요일 오후 3시 vs 전주EM코리아
6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 vs 대구한국파워트레인
9월 1일 토요일 오후 3시 vs 용인FC
9월 8일 토요일 오후 3시 vs 아산FC
9월 29일 토요일 오후 3시 vs 은평청구성심병원
11월 3일 토요일 오후 3시 vs 양주시민축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