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ers

잘가요, 네아가. 우리를 잊지 말아요.

헬레나. 2007. 6. 18. 18:11

 6월 17일 성남탄천종합운동장. 그곳에서 다시 만난 네아가는 여느 때처럼 웃으면서 제게 말했죠. “Hello, my firend." 그러나 그 웃음의 깊이는 평소와는 달랐습니다. 그날따라 탄천운동장에 울려 퍼지던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 ‘Time to say good bye’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들리더군요. 오른손을 내밀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것이 대답이었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했을까요. 그것이 네아가와 만나는 마지막 순간이었으니까요.


 네아가의 본명은 Adrian Neaga. 1979년 6월 4일에 태어난 그는 2001년 루마니아 리그 역대 최다골로 득점왕과 MVP를 수상하며 루마니아 올해의 축구선수로 뽑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05년 전남드래곤즈로 이적한다고 했으니 팬들은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겠죠. 당시 네아가가 루마니아를 떠나던 날, 공항에는 아침부터 25번 등번호가 박힌 네아가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팬들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 울면서 네아가의 잔류를 외쳤습니다. 

 

 그 뒤 루마니아 방송국에서는 서둘러 K-리그 중계권을 샀으며 각 신문사에서는 정기적으로 특파원을 보내 네아가를 취재했습니다. 2005년 8월에는 네아가가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했다고 하니 그를 향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하겠지요?

 

 그렇습니다. 네아가는 루마니아 팬들의 만류와 눈물, 그리고 기대를 뒤로 한 채 온 K-리그에 왔습니다. 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K-리그에서 꼭 성공하길 원했습니다. 간절한 바람 덕분 때문이었는지 다행히 K-리그 입성 첫해 성적은 좋았습니다. 네아가는 이적 첫해 26경기에 출전하며 11득점 2도움을 올렸죠.

 

 네아가가 K-리그로 이적하자마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 중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 한다면 저는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받아들이던 네아가의 ‘Open mind'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봄, 취재 차 네아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케이크와 주스를 내오며 네아가 부부가 처음 했던 말은 “김치 줄까요?”였습니다. 괜찮다며 손을 젓자 당시 부인 엘라는 “한국 사람이잖아요. 김치 같이 안 먹어요? 난 김치가 너무 좋아요”라며 웃었죠. 옆에 앉아 있던 네아가는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말로 “김치, 좋아!”라고 외쳤고요.

 

 혹시 네아가가 처음 한국에 와서 가장 열심히 배웠던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젓가락질입니다. 가끔씩 출출할 때면 젓가락을 이용해 사발면을 먹는다고 하더군요. 옆에는 꼭 김치를 두고 말입니다.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휴게소에서 먹는 순두부 찌개라네요.

 

 “루마니아에서는 첫 골을 넣는 선수가 맥주를 돌리는 오랜 전통이 있어요. 제가 전남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했을 때 루마니아에서처럼 기분 좋게 맥주를 돌렸죠. 그런데 황선홍 코치께서 한국은 시즌 중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 나라는 그런가 보다’ 생각 하고 전부 집에다 옮겨 놓았죠(웃음).” 

 

 이것은 문화의 상대성을 존중하던 네아가의 열린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일화일 뿐입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민속촌에 놀러가 전통혼례복을 입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은 거실 벽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죠. 이렇듯 벽안의 외국인 선수 네아가는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했죠. 그리고 애정이 큰 만큼 K-리그 발전을 위한 일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게 서포터잖아요. 그렇지만 못할 때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응원을 했는데도 너희는 졌다. 이런 식으로 야단도 칠 줄 알아야죠. 서포터즈는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럴 때 선수 입장에서는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언제나 칭찬만 해준다면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는 법이거든요.”

 

 “어린 선수들이 고참 선수들이 하는 말에 눈치 보는 거. 그건 자신 뿐 아니라 팀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많이 바뀐 듯 하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사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해도 그런 서열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선배가 말할 때 후배는 고개 숙인 채 그저 들어야 하는 모습이 정말 이상하게만 보였어요. 물론 한국의 전통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축구를 할 때만큼은 조금이라도 탈피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한국의 축구기자들은 박주영만 좋아하나봐요. (웃음) 축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유독 그 선수 하나에게만 들끓더라고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왔던 2005년이 제일 심했던 것 같아요. 물론 박주영은 좋은 선수에요. 축구도 참 잘하고요. 하지만 잘하든 못하든 그 선수 이야기만 하는 건 잘 이해되지 않아요. K-리그에는 좋은 선수들이 참 많이 있는데 말이죠. 선수 뿐 아니라 기자들에게도 넓은 시야가 필요한 것 같아요.” 

 

 참, 박주영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떠나기 전날 네아가는 “가장 안 좋은 기억을 남긴 선수가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지난 해 서울전에서 날 다치게 한 10번 선수”라고 답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누구였는지 잘 알았기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지요. 물론 다행히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리 좋은 기억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그 부상 때문에 3개월 가량을 쉬어야만 했기 때문이죠.
 

 “난 뛰러 왔어요. 이렇게 쉬어서는 안돼요. 아프더라도 뛰어야만 해요. 지금도 루마니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어요. 루마니아 팬들을 생각해서라도 뛰어야만 해요.”
 

 그렇게 말하며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던 네아가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시즌 초 골이 안 터진다면서 초초했던 모습도요. 그러나 출장 횟수는 안타까운 마음과 반비례했습니다. 2007년 시즌은 중반을 향해 달려갔지만 경기에 투입되는 날은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성남엔 좋은 선수가 정말 많아요. 항상 주전으로 나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저 역시 그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덕분에 스트레스가 정말 이만 저만이 아니에요”라며 한숨짓던 네아가의 근심어린 표정이 떠오릅니다. 
 

 결국 네아가는 6월 17일 대구전을 마지막으로 K-리그를 떠났습니다. 올 시즌 성남에서 “▲정규리그 우승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클럽월드컵 우승 모두를 이뤄보고 싶다”며 “일심(一心) 일체(一體)!”를 외쳤던 그였는데,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이렇게 떠나고 마는군요. 참 많이 아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네아가는 “그런 게 인생 아니냐”는 말로 애써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네아가는 강한 사람이에요. 2001년에 네아가는 정말 최고였어요. Steaua Bucuresti로 이적하자마자 그는 올해의 루마니아 선수로 뽑히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2002년, 2003년에는 그렇지 못했답니다. 발목부상 때문에 그랬죠. 경기장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네아가를 향해 소리쳤어요. 왜 이렇게 못하냐.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그만둬라. 경기장 밖으로 나가라. 그 와중에도 묵묵히 모든 걸 견뎌냈어요. 그리고 다시 부활했죠. 정말 감동이었죠. 주위 말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의 강한 정신력은 정말 대단했어요.”
 

 맞아요. 네아가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부인 엘라의 말처럼 그는 강한 사람이니까요. 한국에서의 마지막 8할은 비록 아쉬움으로 점철되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곧 다시 시작하겠지요. 그래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뛰겠지요.
 

 잘 가요, 네아가.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일지라도 늘 당신 소식에 귀 기울일게요. 그러니 잊지 말아요. 한국을, 그리고 K-리그를.
 

 건강하세요, 네아가. 한국어로 발목에 새긴 딸의 이름, 유니스 문신을 볼 때마다 우리를 떠올려줘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축구로 통한 우리를.
 

 기억할게요, 네아가. 후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 K-리그 우승의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다는 그 말을 잊지 않고 기다릴테니, 그러니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설령 그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