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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한일전, 전북현대 vs 우라와레즈 그 현장 속으로

헬레나. 2007. 9. 27. 06:20

 

 작년 이맘 때 전북현대는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역전의 역전을 거듭하며 참 정신없이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들었죠. 그리고 그때마다 전 슬램덩크의 대사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포기하는 순간, 그걸로 끝이란다." 강백호에게 늘 영감님도 불리던 북산고 농구부 감독은 시합 중에 쓰러진 채 다 끝났다고 생각하던 정대만에게 그렇게 말했지요. 비록 농구만화의 대사지만 전북현대 선수들의 정신을 표현함에 있어 그보다 저 적절한 대사는 또 없는 것 같네요. 왜냐하면 관중들조차 이미 경기를 포기하고 있을 때에도 선수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이유만 보더라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 전북현대 선수들에게 돌아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9월 26일. 추석연휴 마지막날 전북현대는 우라와레즈와 AFC챔피언스리그 8강전을 치루기로 돼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길이 막힐 것에 대비해 서울에서 일찍 출발했죠. 덕분에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양 서포터스의 모습들이었습니다.  N석에는 초록물결이, 또 반대편 S석에는 붉은 물결이 펼쳐져있었습니다. 전북 서포터 분들과 담소를 주고 받다 우라와 레즈 서포터스가 모인 S석으로 자리를 옮겨봤습니다. 역시나 그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응원 삼매경에 빠져있더군요. 그들은 몸을 풀러 나온 우라와 레즈 선수들에게 자신들의 열기를 전해주고 싶었나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조차 쉬지 않고 방방 뛰며 응원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해 저는 그 모습들을 정신없이 동영상으로 찍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찍고 찍고 또 정신없이 찍다 저도 모르게 너무 깊숙이 들어가고 말았거든요. '헉, 아무리 취재도 좋지만 너무 깊숙이 침투했다.' 이 생각이 들었을 때 우라와 레즈 서포터들 역시 저를 둘러싼 채 빨리 나가라고 화를 내더군요. 물론 일본어를 전혀 못알아듣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신경 안쓰는 척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더 크게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이러다 맞을 것 같다는 두려움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때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아는 일본 아가씨가 제게 다가와 "찍지 말래요. 더 찍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요"라며 저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하더군요. 물론 처음엔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독기를 보고나서야 빨리 가야겠다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갔죠. 

 

 그래도 전반전은 당당히 우라와 레즈 서포터 석에 앉아 경기를 봤습니다. 그들의 응원문화가 K-리그와는 얼마나 다른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저씨, 아주머니 뿐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우라와레즈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새 그들 삶에서 우라와레즈를 응원하는 것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러워보였답니다. 특히 열정적으로 깃발을 흔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더 제 눈을 사로잡았죠.

 

 어쨌거나 결국 경기는 0-2로 끝이 났고 우라와 레즈는 4강행을 결정지었습니다. 이로써 전북현대의 AFC챔피언스리그 2연패의 꿈은 아쉽게 다음 기회로 미뤄지게 됐네요.

 

 그렇지만 전북현대는 정경호의 퇴장-논란의 여지가 심히 남아있는-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경기 내내 보여줬습니다. 최강희 감독 역시 우라와 레즈와의 원정 1차전에서 부친상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덕장의 모습을 보였고요.

 

 그런 이유에서라도 저는 이 경기를 'End'가 아닌 'And'로 생각하려 합니다.

 전북의 마법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니까요. 

 

 그러니 부디 '힘을내라, 전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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