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속바다,혹은별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헬레나. 2010. 4. 6. 16:09

어젯밤만 해도 날씨가 추워 역시 강원도 날씨는 아무도 못말려, 라고 외치며 보일러를 돌리고 전기장판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장롱에 넣어두었던 점퍼를 다시 꺼내입고 출근을 했더니만, 오늘은 날이 제법 따뜻하다.

 

오늘은 도청에 계시는 고대 선배님이 불고기 백반을 사주셨다. 좁았던 세상이  갑자기 넓게 보인다. 이곳 저곳에서 일하는 교우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가 넓어진 덕분인 듯 싶다.

 

점심식사 전에 발령이 났다. 이사를 가야한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시 짐을 챙기고 책상과 책장과 침대를 옮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괜찮은 원룸은 이미 다 나간 걸로 아는데... 그래도 선수들은 그게 편하지 않겠냐며 축하해주고 있다. 특히 쫑.

 

오후 2시 쯤에 뽀로리한테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가 싶어서 콜백을 했더니, 레포트를 써달란다. 저번에 차 마시던 도중에 스쳐 지나가듯이 한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 집에 가도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노트북 앞에 앚아서 글이나 써줘야겠다. 그래도 내가 잠잘 데가 없다고 했을 때, 방도 빌려주려고 했고 차도 같이 마셔주고 음... 웨딩홀 가는 길도 모른다니 같이 가주려고 하고 쉴 공간도 내주고... 이래저래 마음 씀씀이가 착하고 또 따뜻한 아이다. 여자친구는 무뚝뚝하다고 투정부리지만, 내가 봤을 땐 무뚝뚝하고 차가운 겉모습을 띠고 있지만 알고 보면 따뜻하게 음식을 담고 있는 뚝배기 그룻 같은, 그런 아이인 듯 싶다. 그러니, 도와줘야지. 마음이 예쁜 아이니까.

 

그리고 오늘 드디어 편지가 도착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1시간 넘게 통화하던 게 미안해,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을 전화 대신 편지로 써서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통화의 여운이 남아 노트북 앞에서 못한 말들을 문장으로 쏟아내니, 세상에나, 3장이나 되더라. 그걸 말로 풀어냈으면 1시간짜리 통화 내용이었을 것 같다.

 

그것은 그만큼 너가 내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겠지.

 

처음 봤을 때, 너무 예쁘게 웃어서 놀랐고, 구김없이 따뜻한 그 미소에 자꾸 시선이 갔고, 다른 사람에게 슬쩍 마음을 내비쳤다가 부담이 간다고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한다리 건너 들었을 때, 그 사람이 참 부러웠었다.

 

하지만,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으니까, 그냥 이렇게 지내련다. 가끔 만나고 가끔 편지쓰고 가끔 통화하는. 이성애가 아닌 동료애 같은 혹은 형제애 같은 그런 머음으로.

 

어쩌면 용기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거절 당할까봐 두려우니까.

바닥까지 떨어지는 내 마음을 보기 싫으니까.

   

나를 보호하고 싶다.

눈물 흘리는 나가 아닌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싶다.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느라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하고 나에게 신경쓰지 못하는 일,

이제는 두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고

각자 가정을 꾸리며 살더라도 서로의 가정을 축복해주고

행복을 빌어주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마음을 고백하지 않을 거야, 라고 나에게 말한다.

굳이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연애를 하지 못한다고 잊고 돌아서기엔 좋은 사람이니까.

이성이 아닌 인간으로서도 말이야.   

 

이곳에도, 겨울과 눈만 가득할 것만 같은 이곳에도,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덩달아 마음도 설레인다.

 

하지만 이 설레임이 언제 상실감으로 뒤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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