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여기는 한국입니다

헬레나. 2003. 8. 10. 05:49

29박 30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거실 컴퓨터에서 요구르트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지요.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은진이와 '맥도날드' 라고 쓰여진 인천공항 Mac 간판을 보구 어찌나 웃었는지요. 한글이 너무나 정겹게 다가오더라구요.

 

다들 일본여행을 떠난 줄 아는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유럽여행이랍니다. 일본 JAR항공티켓을 끊은터라 도쿄 나리타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오사카에서 1박을 하는 경유하는 여행이었지요. 그래서 일본에 간다고 했는데, '일본을 거쳐 유럽으로 갑니다' 로 정정합니다. ^^

 

이번 여행은 정말 좋았답니다.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면서 교과서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온몸으로 다시한번 느껴보기도 했고, 때론 책에서 배운게 다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나중에 아이를 나면 코스모폴리탄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여행 내내 했답니다. 그리고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세계를 떠돌아다닐 때마다 아이도 함께 대동해 세계를 향한 넓은 시각을 키워주고 싶네요. 멋진 엄마가 될 것 같지요? ^^

 

그곳에서 밥은 안 먹어도 매일 일기를 꼬박 쓰고 잤답니다. 어떤 날은 일기 쓰고 자느라 3~4시간 밖에 못자기도 했구요. 제가 경험한 세계를 이곳에서 많은 분들과 교감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피곤해도 꼭꼭 쓰고 잤답니다. 노트 1권 반을 다 채웠으니 열심히 썼지요? 방학이 가기 전에 다 올리도록 할게요!

 

도쿄->파리->니스->바르셀로나->루체른->인터라켄->취리히->로마->베니스->빈->부다페스트->프라하->뮌헨->프랑크푸르트->런던->오사카

 

제가 여행하면서 들렀던 도시들입니다. 프랑크푸르트는 예정에 없었는데 두리오빠 보러 들렀구, 그때문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정을 포기했지요.

 

여행 첫날, 도쿄에서 700m 약간 넘는 터널을 쉬지 않고 뛰어가고, 약 2시간 가량 무작정 걸어서 발견했던 라면집! 그곳에서 만났던 요이치상! 저보다 더 잘 다듬은 눈썹이 멋졌던 사람이지요. 함께 찍었던 사진은 라면집으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주소' 라는 제 발음을 "쥬쇼" 라고 고쳐주기까지 한. ^^;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붉은악마 박수까지 알았던 친절했던 라면집 알바생입니다. ^^

 

파리에서 도착한 첫날, 에펠탑에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섰을 때 만났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가족. 그 중 모하메드라는 막내아들이 생각나네요. 제가 안녕! 할 때마다 차도르를 쓴 엄마나 누나들 뒤에 쏙 숨었지요.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대요. 나중에는 제 손도 잡아주고 에펠탑 제일 꼭대기에서 같이 사진도 찍었지요.

 

뽕네프 다리에서 영화 뽕네프의 연인들에 나왔던 줄리엣 비노쉬 흉내를 내며 뛰어가다 만났던 프랑스 아저씨.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받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죠. 자꾸만 저보고 이쁘다고 남자친구 없냐고 하구. ^^ 그렇지만 한국분이랑 결혼하셔서 한국에 사는데 지금 잠시 프랑스에 들렸던 거라네요. 외국인 등록증까지 보여주셨죠. 그 다음날 지하철 역 바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날이 마침 프랑스 혁명기념일이라 역 바깥이 폐쇄돼 기다리다 우리 일정도 있어 이동했죠. 자기 실수로 장소를 잘못 정해서 못만난거라며 미안하다고 메일이 왔더라구요.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 다리 위를 나름대로 귀엽게 뛰어간다고 해서 뛰었는데 무슨 일난 줄 알았나봐요. 아저씨가 보기에는. ^^

 

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주간이동할 때 만났던 프랑스 꼬마아이들. 첫째였던 안토니 이름만 생각나네요. 해리포터와 똑같이 생겼던 둘째와 그 작은 손으로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발로 차던 이제 겨우 3살이었던 막내 이름만 지금 생각이 안납니다. ^^; 그렇지만 안토니가 세명 각자 이름을 하나씩 적어줬으니 지금 찾아보면 어딘가에 이름이 있을텐데 귀찮아서 못찾겠습니다. ^^;;;

 

안토니는 제가 말을 걸어도 관심없는 척, 무심한 척을 잘해서 나중에 바람둥이가 될 기질이 다분히 보였답니다.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방귀소리를 냈을 때는 그 이미지가 완전히 깨졌지만요. ^^ 그리고 제가 불어로 간단한게 물어보자 불어를 꽤 잘하는 줄 알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전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웠던 거구 불어책 놓은지는 3년이 다되가니까요. 이제 다시 공부하려구요. ^^

 

둘째는 귀여운 웨이브머리에 동그란 안경, 하얗고 뽀얀피부만으로도 딱 해리포터 그 자체였는데 해리포터 T까지 입고 있어 더욱더 해리포터 같았답니다. 해리포터 좋아하니?라고 물었을 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네! 하고 말했던게 아직도 생각나네요.

 

막내는 기차에서 내내 제가 망나니라고 불렀죠. 애들한테 데오드란트를 뿌려주니까 막내가 돌아다니면서 형들 겨드랑이 냄새를 맡으면서 "한번 더!" 를 외쳤지요. ^^ 그 모습을 할머니는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주소도 가르쳐주셨어요. 역시 사진을 보내드려야겠죠.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분수쇼는 잊지 못할 것 같네요. 나중에 꼭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와서 보고 싶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봤던 플라맹고쇼. 나중에 꼭 시간내서 배우고 싶어요. ^^ 나중에 저도 무대에 올라가서 남자 댄서와 함께 췄는데 허리가 안돌아가더군요. ㅠ.ㅠ

 

바르셀로나를 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죠셉 때문입니다. 그는 제가 묵었던 호텔에서 일하는 벨보이였지요. 제 항공권을 책임졌던 여행사에서 여권 복사본을 분실했다고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지요. 그래서 1층으로 내려가서 팩스를 보내려고 했는데 1유로가 모자랐어요. 지갑에는 10유로 지페 한장만이. 팩스비는 11유로였구요. 다시 올라가기 귀찮아서 지갑 보면서 한숨 쉬고 있는데 죠셉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제게 1유로를 주더군요.

 

게다가 팩스 보내는 법도 가르쳐줬는데 제가 적은 번호가 잘못된 번호라고 나와서 결국 다시 숙소로 올라갔는데 벨이 울려서 문을 열고 나가봤더니 죠셉이 한국에 팩스보내는거 다시 가르쳐주겠다며 제 방까지 올라온거에요. 그래서 제가 온 김에 아까 빌려준 1유로를 다시 돌려주려고 했더니 한사코 거절하며 "너가 나에게 태양같은 미소를 선물로 줬으니 그걸로 됐다" 라고 말한 뒤 사라지더라구요. 다시 팩스보내려고 내려갔을 때 그에게 메일 주소가 있냐고 물어봤죠. 그러자 없다면서 자기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더라구요. 그런데 스페인 밖에서 할 때는 국가번호를 눌러야한다며 국가번호까지 가르쳐줬답니다. ^^

 

아~ 그리고 제가 입은 학교 T를 보고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안에서 누군가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지요. 호주 남자 2명이었는데 한국에 2달간 있었다네요. 한국의 문화와 음식 등에 아주 잘 알고 있어 즐겁게 이야기를 했답니다. 제 메일 주소를 물어봐서 가르쳐줬는데 아직 메일이 안오네요.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여행 중인 사람들이라서 바뻐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제가 그 두 사람 연락처를 몰라 메일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한답니다.

 

인터라켄에서는 야밤에 호텔 찾아 헤매다 북극성과 북두칠성, 카시오페아를 봤답니다. U.F.O도 봤구요. 다들 안 믿겠지만. -.-; 어쨌건 밤하늘을 가득 메우던 수천개의 별들을 처음으로 봤던 그 밤을 저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던 번지점프도요. 자그마치 125m 높이에서 뛰었답니다. 래프팅 할 때는 북한에서 온 고등학생이 되기도 했구요. 친구 은진이랑 까아악~ 소리 지르면서 탔는데 다들 고등학생이니 그럴 법도 하지, 하며 아주 귀엽게 바라보며 웃어줬답니다. ^^;;

 

로마에 도착한 첫날에는 그 유명한 집시를 봤답니다. 우리 일행 중 한명 지갑을 집시 아줌마가 뺏어가려구해서 제가 못 도망가게 잡았지요. 너무 말라서 제가 한손으로 잡는데도 못 도망가더라구요. 아이들은 사요나라~ 하며 손을 휘젖고 신문을 들이대며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했구요. 그땐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지만 나중에 호텔에서 은진이는 120스위스프랑과 여행자 수표, 저는 20만원이 넘던 안경과 오빠는 두리오빠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잃어버렸지요.

 

저와 함께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광장을 구경했던 그레고리.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그레고리 팩과 이름이 같아요. 처음 봤을 때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동양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페인광장 계단을 올라가다가 자기 엄마가 중국인이라고 말해줬지요. 같이 저녁도 먹고 윈도우 쇼핑도 하고 슈퍼마켓도 가구 그렇게 오후부터 저녁까지 함께 놀다 헤어졌어요. 매년 엄마 고향에 간다는데 내년 여름에 중국에 들리면서 서울에 오겠다고 저와 약속을 했어요. 헤어질 때 제게 깜짝 키스를 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 어쩌면 이번 겨울에 제가 헝가리에 가서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레그는 지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경제학과 윤리학을 공부하고 있답니다.

 

베니스는 하늘 색이 제일 이뻤던 나라였답니다. 곤도르를 타면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난 곤도러일 뿐이지 가수가 아니라며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만든 느끼했던 아저씨가 생각나네요. 그곳에서 로마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봤던 베트남 가족들을 다시 만났지요. 15명 정도 되는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두팔 벌린 채 달려오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처음에는 정말 놀랐답니다. ^^ 그래도 저를 다시 만난 것만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제 기분이 다 좋아지더라구요.

 

빈으로 가던 슬리핑 카에서 만났던 차장아저씨와 크리스. 둘다 오스트리아 사람이죠. 오스트리아의 문화와 특징 등을 가르쳐줬죠. 저는 한국어랑 한국문화의 특징에 대해 가르쳐줬구요. 나찌에 의해 점령을 당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터라 둘다 독일인을 너무 싫어하더라구요. 그래도 독일어를 쓰는 나라에서 사는지라 저에게 간단한 독일어를 가르쳐주기도 했구요. 역시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로 했답니다. 아저씨는 이탈리아에서 아들 2명과 여자친구랑 같이 사는데 예전에 스시집에서 요리사로 있었대요. 나중에 이탈리아에 놀러오면 자신이 잡은 고기로 스시를 만들어주겠답니다. ^^ 그리고 크리스는 이번에는 시간이 안되고 다음에 오스트리아에 오면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주겠다고 약속했지요. 흔들리는 기차안에서 홀짝 홀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밤. 근사하고 또 즐거웠답니다.

 

부다페스트와 프라하. 나중에 겨울에 다시 한번 오고 싶었던 곳이었답니다. 1박 2일만 있었던터라 특별한 인연을 만들지 못함이 아쉬웠어요. 프라하 식당에서 만난 지배인 아저씨가 인연의 전부라고 해야하나요.

 

뮌헨을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만난 두리오빠. 첫째날에는 오빠가 호텔도 잡아주고 갈비도 사주고, 둘째날에는 시내 구경도 시켜주고, 한인교회도 데려가주고 새집에서 재워주기까지 했답니다. 그 다음날 차범근 아저씨와 함께 한 아침식사도 꽤 재밌었죠. 여행하는 내내 인터넷 사용도 안되고 집에 전화해도 안부 전하기 바빠 한국 돌아가는 소식을 몰랐답니다. 그런데 아침식사 전 정몽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시더라구요. 유럽에서 처음으로 들은 한국소식! 조금은 충격적이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정치 얘기까지 하게된 조금은 심오한 아침식사시간이기도 했지요. ^^ 어쨌건 차범근 아저씨~ 역까지 택시타고 가라며 50유로를 주셨는데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두리오빠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벨기에는 제가 삐져서 아무 말 없이 홍합만 계속 먹었던게 생각나네요. ^^; 게다가 호텔은 에어컨 하나 없었고 이불은 모로 만들어졌답니다. ㅠ.ㅠ 그런데도 은진이는 창문을 다 닫아버리고. 더워서 자다 일어나기는 처음이었죠. 일어나서 자폐아 모드로 창문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잤지요.

 

런던. 참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베르캄프 경기 장면도 비록 TV지만 오랜만에 봤구, 아스날 구장에 가서 베르캄프 활약상도 보구, 사진도 보구, 또 베르캄프 유니폼도 샀지요. 곳곳에 널린 영국왕실 사람들 사진도 좋았구(그냥 좋더라구요~ 그런데 윌리엄은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서 안타깝습니다) 맘마미야 뮤지컬도 너무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아바의 노래들이 다 나와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답니다. 밀레니엄 브릿지에서 은진이와 사랑의 서약도 하구. ^^

 

런던에서 도쿄행 비행기 좌석이 없어 오사카로 가게 됐지요. 대신 이코노미 좌석이 비지니스로 올라가서 오랜만에 사람 대접받으며 황홀해했지요. 여행 내내 제대로 못 먹고 고생만 하다 친절한 승무원들의 보살핌(?)을 받으니 기분 참 이상하더라구요! 비행기에서 엑스맨 2를 4번이나 봤답니다. 키스 씬이 나올 때마다 솔로라는 사실에 다시한번 눈물을 삼키며 시간을 보냈죠.

 

오사카 호텔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간사이 지방을 덮친 태풍 때문에 뉴스는 밤새 계속 나오고 아침 9시 15분 비행기가 결항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 시간에 출발했답니다. 아침까지 나무들은 태풍 때문에 쓰러질 듯 흔들렸는데 말이죠. 게다가 도로에는 물보라까지!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선물을 주니 다들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밥 값 아껴가며 선물 값 마련해 사온 보람이 있습니다. ^^ 여기까지 제가 한달간 여행하며 있었던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몇개만 간추려서 올린거구요,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여행기 올릴게요.

 

저는 이제 자야할 것 같네요. 비행기에서 제대로 못잤거든요. 엑스맨 2 때문에~ ^^ 한국와서 나쁜 점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훨씬 많네요. 아빠는 제가 유럽에서 음료수 하나 제대로 못사먹고 지냈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가서 제가 좋아하는 쿠우와 요구르트를 잔뜩 사오셨어요. 엄마는 여행 내내 먹고 싶어했던 라면, 그것도 계란 풀은 라면을 끓어주셨구요.

 

옥탑방 고양이랑 여름향기, 장미의 전쟁, 싱글즈, 피노키오, 신밧드, 터미네이터 3. 여행 내내 보고 싶었던 것들이에요. 이제 찬찬히 하나씩 봐야죠~ ^^

 

추신) 여행 중에 독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통화. 나는 너무 좋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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