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있는 풍경

당당해서 아름다운 그녀, 최초의 여성 경기분석관을 꿈꾸는 박효진 씨

헬레나. 2006. 3. 26. 08:42

 초등학교 시절, 또래 아이들보다 꼭 머리 하나 더 컸다. 나보다 더 큰 남자아이들도 보기 힘들었다. 체육시간은 나의 시간이었고, 나보다 높이 또 빠르게 뛰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5학년이 되던 어느 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됐다. 스카웃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 날부터 나는 농구선수 박효진으로 불려졌다.

 

 2003년 10월 추계대학연맹전이 열렸던 효창운동장. 고려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찾아갔던 그곳에서 기자는 우연히 한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날의 경기 상황과 각 선수들의 특징이 잔뜩 적힌 수첩이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박효진. 이화여대 체육학과 02학번, 그리고 K2리그 기자. 그것이 그날의 대화 도중 알게 된 그녀의 인적사항 전부였다.

 

 그 뒤로 경기장에 갈 때마다 현장에서 취재 중이던 효진 씨를 만날 수 있었고, 몇 분간의 대화는 몇 시간으로 점점 늘어갔다. 학창시절 잘나가던 농구선수라는 사실도 새로이 알게됐다.


 그렇다. 효진 씨, 그녀는 농구 선수였다. 드리블 돌파 및 3점 슛, 점프슛이 특기였던 은광여고 파워 포워드.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던 그녀는, 2001년 농구 특기자로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 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효진 씨는, 입학 후에도 농구와 운동을 병행했다. 그러던 중 생각보다 일찍 농구 인생을 마칠 일이 찾아왔다. 바로 예기치 않게 찾아온 발목 부상. 부상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고, 그리하여 효진 씨는 농구선수라는 이름을 내려놓게 된다.

 

 10년이 넘게 한결같이 하던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불안감이나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효진 씨는 달랐다. 새로이 시작한 일들과 새롭게 발견한 또 다른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축구였다. 2002년, 당시만 해도 월드컵 광풍으로 인해 온 국민이 축구매니아였던 때였다. 하지만 효진 씨에게는 농구선수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축구 현장에서 일하던 효진 씨가 어떻게 해서 축구를 좋아하게 됐는지 궁금해했다. 필자 역시 처음 효진 씨를 만났을 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니.

 

 "고등학교 시절 때 이동국 선수를 좋아했거든요. 98 프랑스 월드컵 기간 중에는 새벽에 일어나 이동국 선수가 뛰는 경기를 봤어요. 그 다음날 중요한 시합이 있는데도 말이죠. 손가락을 다쳐서 수술을 하느라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는데, 이동국 선수를 봐야한다면서 병원을 탈출하기도 했었구요. 그래서 만났냐구요? 아뇨. 한번도 만난 적은 없구요 멀리서 몇 번 보기만 했어요. 한 선수를 좋아하게 되면서 축구를 알게 됐는데,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인 스포츠였어요. 농구는 경기 전개가 빠르잖아요. 계속해서 골이 터지고 스피디하게 경기가 진행되죠. 반면에 축구는 오랜 기다림 뒤에 골이 터지잖아요. 그 골 맛 때문에 축구에 빠진 것 같아요."

 

 '농구선수가 농구나 하지 왜 하필 축구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던 효진 씨. 운동선수 출신을 낮게 보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실력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효진 씨는 공부하며 노력했다. 지금도 축구에 대해 썩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노력을 조금씩 알아주는 사람이 생겨 너무나 고맙다고.

 

 작년 한해, 효진 씨는 미포조선 축구팀에서 경기 분석관으로 있었다. 경기분석관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서 그녀는 최초의 여성으로 일했다. 미포조선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이를 캠코더로 찍은 뒤 패스 성공률이나 볼 점유율 등을 분석해 미팅 시간에 보여주는 일을 맡았다. 효진 씨의 이런 노력 덕분일까. 지난 해 미포조선은 2005 대통령배의 우승컵을 당당히 거머줬다. 

 

 앞으로의 꿈을 묻자 "여자 대표팀 경기 분석관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말에 기자가 "대표팀에서 일하고 싶다구요? 성공하면 실업리그 경기는 보러 가지도 않겠네요." 라고 장난스럽게 질문하자 정색을 하며 대답한다. "아니에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곳인걸요. 한국 축구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곳이므로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쏟아야죠."

 

 당당해서 아름다운 그녀, 최초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는 그녀, 박효진. 그녀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가까운 축구장에 가보시길. 그곳에서 초록빛을 싱그럽게 머금으며 자라나는 잔디처럼 꿈을 키워나가는 효진 씨를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