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ootball

아스날 하이버리 구장 가던 날... ^^

헬레나. 2006. 4. 17. 02:49

 2003년 여름방학. 내 생애 첫번 째 어리버리 배낭여행이 시작된 여름.

 

 나의 런던행은 단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의 우상이었던 베르캄프가 뛰는 경기장을 직접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 시작됐다.  대영박물관 관람도 포기한 채 아스날 역에 내리던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봤을 때의 전율이란! 

 

 경기가 없는 날이라 생각보다 적은 사람들이 하이버리 구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다들 어린 영국 꼬마들 뿐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그 아이들과 함께 온 보호자들. 경기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데 동양 사람은 나 뿐이더라. 그것도 모자라 까만 머리 휘날리는 여자라니. 

 

 때문에 그들 눈에는 내가 신기하게 보였나보다. 나를 둘러싼 채 구경하는 영국 꼬마들 사이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난 베르캄프를 좋아하는데, 너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야?"

 

 그런데 아이들에게서 "나도 베컴 좋아해요! 그치만 난 아스날 팬이거든요. 앙리가 더 좋아요." 라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흐음. 이상한데? 이 동문서답이란?

 

 그렇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베르캄프' 라는 내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다들 "베컴?" 이라고 알아듣더라. 맙소사. 아스날 구장에서 베컴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동양 아가씨라니. 다들 티는 안냈지만 아마도 심히 짜증 났으리라. 신성한 아스날 성지에서 베컴 타령을 했으니 말이다. (물론 절대 아니지만! ㅠ.ㅠ) 그러나 어쩌겠어. 내 굳은 혀가 문제인걸.   

 

 벌써 3년 전의 일이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식상된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제 하이버리 구장은 역사 뒷편으로 가게 됐지만, 그날 내가 본 하이버리 구장은 영원히 내 마음 속에서 빛나리라. 베르캄프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