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ers

K-리그 신인왕 후보, 염기훈이 돌아왔다

헬레나. 2006. 9. 22. 17:23

 

 

“경기 끝나고 밤에 잠이 안 왔어요.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골이 들어가던 그 순간이. 그날 그렇게 많은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하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그동안의 부담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어 무척 기분 좋았어요.”


 21일 2군 게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염기훈은 아직 상하이 선화전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듯 했다.


 “대전전 승리 이후 단합도 정말 잘됐고, 팀 분위기도 아주 많이 좋아졌어요. 분위기 탄 거 같아요. 사실 저희가 처음 전반에는 게임이 잘 안 풀렸잖아요. 그래도 마음은 편안했어요.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 있었거든요. 진짜 저희 다 잘한 것 같아요. 저는 뭐 잘… (웃음) 전반에 제가 찬 프리킥이 두 번 다 아쉽게 안 들어갔는데… 처음엔 저도 들어갈 줄 알았어요. 딱 때렸을 때 됐다 싶었는데 빗나갔어요. 두 번째는 (정)종관이 형이 건드려서 밖으로 나갔어요. 나중에 형들이 종관이 형한테 왜 건드려서 방해했냐고 그랬는데, 형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나 중국이야. X맨이야. 몰랐어?“ (웃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저희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큰 경기 뛰면서 많이 강해졌거든요. 감독님이 항상 그러셨어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뛸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프로 와서 한 번도 못 뛰는 선수들도 많잖아요. 다들 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심히 뛰었어요. 진짜 투혼이죠. 그래서 좋은 결과가 온 것 같아요.”


 좋은 결과라. 비단 팀을 두고 한 표현이 아닐 게다. 어쩜 바로 지금 스스로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인지도. 다시 골을 터뜨리기까지, 그는 얼마나 오래 기다리며 인내했던가. 염기훈, 그는 후반 23분 그림 같은 헤딩골을 성공시키는데 이어 후반 32분에는 시원한 코너킥으로 정종관의 골을 도왔다. 지난 7월 19일 대구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이후 꼭 두 달만의 일이었다.


 “공격수면 누구나 골을 터뜨려야하는 부담감이 있잖아요. 게다가 전 이제 막 복귀를 한 상태라 부담이 컸어요. 포인트를 올려야 자신감도 올라갈 텐데. 그런 부담감 속에서 복귀하고 2게임 만에 골을 넣어 우선은 무척 기분 좋았고 또 감격스러웠어요. 그 순간 기쁨을 어떻게 표현 못하겠더라고요. 2대 1로 역전했지만 1골을 더 넣어야 우리가 4강에 올라가는 거였 잖아요. 제 골로 3대 1이 되는 순간, 이제 됐다. 올라갈 수 있겠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동안 사고 이후로 침울하게 보냈던 시간들도 같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때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서 더 감격스러워했던 것 같아요. (웃음)”


 다친 머리보다 마음이 더 아픈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보낸 시간이기도 했다.


 “프로는 냉정하잖아요. 잘하면 뛸 수 있지만 못하면 그럴 수 없으니까요. 신인인데, 좋은 모습 보여줘야 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잘할 수 있을까? 몸 상태는 돌아올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혼자서 속상해했죠. 아쉬웠고, 또 답답했고.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순 없었어요. 걱정하는 거 아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안부를 물으며 걱정했다. 그 가운데 가슴으로 눈물 흘리던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와 팀 동료 김형범이었다.


 “대전전 끝나고 엄마가 많이 속상해하셨대요. 인터넷으로 제 사진을 보셨는데 사진에 이마 흉터가 그대로 나왔다면서요. 병원에서 소독하느라 붕대를 푼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상처가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면서 속상해하셨어요. 그런데 경기 끝나고 누나한테 전화가 왔는데, 엄마 운다고, 옆에서 울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음… 많이 기쁘셨나봐요. 동네 분들하고 다 같이 오셨는데 좋은 모습 보여드린 것 같아 저도 기뻐요.”


 “그리고 (김)형범이… 형범이가 경기 전날 제 방에 와서 그랬어요. 제가 해줘야한다고. 지난 대전 경기 때부터 계속 저보고 운동장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해줘야한다고 그랬어요.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제 골이 터지던 순간 저희 엄마 손 잡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대요. 경기 끝나고 나선 저한테 달려와서 껴안는데, 눈이 엄청 빨갛더라고요. 거의 울 것 처럼요. 그래서 저도 고맙다며 껴안았죠. 사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형범이는 계속 미안하다 그랬어요. 그때마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했고, 저는 오히려 그게 더 미안했어요. 이번에 큰 일 한번 같이 치루고 나니까 둘 사이가 더 끈끈해진 것 같아요.”


 이번 상하이 선화와의 경기는 그에게 기분 좋은 승리만 안겨준 것이 아니었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우정, 다시 찾은 자신감,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 잃었던, 그래서 잠시 잊을 수밖에 없던 것들과 조우한 시간이었다. 그 때문에 햇볕 아래서 웃고 있는 염기훈의 모습은 무척이나 밝고 환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토요일에 홈에서 대구와 만나잖아요. 재밌지 않나요? 대전에 이어 대구와 경기를 치르게 됐잖아요.” 그랬더니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며 웃는다.  


 “신인왕 이야기 꺼내시려는 거죠? 요즘 신인왕 관련 기사가 많이 올라오는데, 그때마다 저랑 대전시티즌 (배)기종이, 대구FC (장)남석이 이야기가 꼭 같이 실리잖아요. (웃음) 지난 주 대전이랑 게임할 때 기종이가 엄청 잘했어요. 움직임이 상당히 좋았어요. 자극 받았죠. 토요일에는 대구 꼭 이겨야죠. 남석이도 라이벌인데. (웃음) 솔직히 기종이, 남석이 다 의식돼요. 의식 안한다면 거짓말이고요. 아무래도 신인왕이라는 게 일생에 한번만 받을 수 있는 상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은 팀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공격수는 다들 골 욕심이 많잖아요. 골로 보답해야하니까요. 하지만 골을 넣어야겠다는 개인적인 욕심보단 팀을 먼저 생각하고 싶어요. 요즘 팀 성적이 안 좋아서 어려운 상황인데, 욕심 같은 건 버리고 팀을 위해 뛰고 싶어요. 팀에 보탬이 된다면 결국 저에게도 좋은 거잖아요. 팀이랑 같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만 가지려고요. 열심히 해야죠.”


 마지막으로 대구전을 앞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역시나 언제나 유쾌한 남자, 염기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남석아, 천천히 해. 나 쉬는 동안 너, 너무 달렸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