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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리그 MVP 수상자, 인천UTD 이근호 생생 인터뷰

헬레나. 2006. 10. 27. 09:44

 

 

 “아, 우선 너무 기분이 좋고요. 뭐 우승할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어요. 꿈자리가 좋았거든요. (웃음) 그렇지만 MVP 받는 건 예상 못했어요. 그냥 형들이 너가 받는다. 긴장하고 있어. 이렇게 장난 식으로 이야기 했는데 진짜로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집에서 특별히 말씀하신 건 없어요. 부모님 두 분 다 무뚝뚝하셔서 표현 같은 거 잘 안 하시거든요. 그냥 아버지가 상 받았으니까 외식할까? 뭐, 이 정도? (웃음) 아직은 제가 MVP 받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 1년 동안 1군에서 다 같이 게임 뛰면서 우승한 거라면 더 좋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잖아요. 아쉽지만 그래도 게임 못 뛰는 서러움 떨칠 수 있는 자리가 여기 2군 리그 바로 이 자리밖에 없는데, 이렇게 우승한 덕분에 그동안의 서러움 푼 거 같아 좋아요.”

 

 시합은 한참 전에 끝났건만 그의 호흡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다. 단지 MVP 수상 기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축구선수 이근호’ 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던 기회였기 때문에, 그는 좀처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가 뱉어내는 문장의 시작과 끝, 그 미세한 떨림은 분명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가 인천출신이라서 인천 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시는데요, 더 열심히 해서 1군 리그에서 골도 넣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팬들한테 더 보여드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상을 계기로 다른 선수들도 다 올라섰듯이 저도 높이 올라가겠습니다. 내년에는 1군 리그에서 올해 못했던 거, 여태까지 못했던 거,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그 순간, 문득 언젠가 이근호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개인 홈페이지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이제 웃는 일만 있을 거야. 긍정적으로 후회 없이 달려보자. 축구, 너란 놈은 나를 무지하게 힘들게도 하고 원망도 하게 하지만 지금까지의 나를 있게 해주었고 너 없인 살수 없는 나를 알기에 미워 할 수가 없다. 나 노력할 테니 내 맘 아프게 하지 말고 항상 웃을 수 있게 도와줄 거지? ^^* 기죽지 마라.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달리고 싶다.

 

 슬픈 자화상으로 있던 시간이었다. 이제 웃는 일만 있을 거야, 라고 다시 외치기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부평고 3관왕의 주역, 노란완장이 잘 어울리던 이근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돌이켜보면 미련만 있을 뿐이에요. 2004년 19세 대표팀 한일전 당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경기 때 잘 못했어요. 박성화 감독님도 저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하셨고요. 그 뒤 1년가량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요한이가 저랑 같은 팀에 있잖아요. 요한이 혼자서만 아시아청소년대회에 뽑혀 다녀왔어요. 저야 뭐 제가 못해서 못 간 거니까 괜찮았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뭐 어때. 다음엔 잘하면 되지. 그렇게 위로하더라고요. 참 가슴 한 구석이 싸하더라고요. 한 6-7개월을 그렇게 보냈던 것 같아요. 2군 경기도 못 뛸 정도로 엄청난 슬럼프가 왔어요. 가슴 아팠죠. 장외룡 감독님도 실망 많이 하셨고요. 저에 대한 기대도 많았을 텐데 제가 잘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이듬해 2005년 수원컵 4개국친선대회를 시작으로 다시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기 시작했어요. 그해 여름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세계청소년대회에도 갔다 왔는데요, 그땐 뒤에 있던 기억만 나요. 그냥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어요. 나이지리아전에서 극적으로 이기면서 다들 좋아라했는데, 저도 옆에서 좋아라 했지만 뭔가 허전한 생각만 계속 들었어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아요.”

 

 그때부터였다. 할 수 있다, 라는 말을 수없이 곱씹기 시작한 것이. 당장의 유희를 쫓기보단 참고 노력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준비하면 분명 기회도 올 것이라 생각했다. 현명한 자는 분명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지 않던가. 이근호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항상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결국은 잘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그것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뛰는 거잖아요. 더 많이, 더 열심히 뛰자. 다른 생각보다는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 그 생각만 했어요.”

 

 그렇지만 아직 햇빛은 온전히 그의 이마를 비추고 있지 않다. 온 몸으로 그 빛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올해 역시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많이 못 뛰었으니까요. 사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지금 당장 10살짜리 꼬마를 여기 데리고 와도 게임 뛰고 싶다 그럴걸요. 경기 뛰고 싶은 마음은 선수라면 누구나 다 똑같이 갖고 있어요. 다만 저는 아직 어리니까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아있는 거예요. 이제 시작이니까요. 그러니 남은 시간 올해에 대한 미련에 젖어 보내기보단 내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많은 욕심 안 부릴래요. 그저 교체로라도 1군에 얼굴 자주 비칠 수 있도록 많이 뛸 수 있는 기회 잡으려고요. 노력할 거예요. 지켜보세요.”

 

 오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내일을 꿈꾸기 때문이다. 2군리그가 아름다운 까닭 역시 K-리그의 별이 되기 위해 뛰는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잔디 위에서 땀 흘리던 청춘들은 정녕 아름다웠다. 그러나 “축구가 제일 좋아요. 애인보다 더 좋은 게 축구에요” 라고 말하며 웃던 이근호는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세상 모든 별빛의 순수를 얼굴 가득 머금고 있는 사람은 늘 그렇지 않던가. 그러기에 이근호, 그는 진실로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