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있던 방

성형시대, 폴포츠가 주는 감동

헬레나. 2007. 12. 31. 12:12

모 여자 연예인이 성형수술 뒤 과다출혈로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안면윤곽수술이 아니라 치아교정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본인 스스로 “수술하다 죽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얼마 전 여성포털사이트 마이클럽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성형모델 선발대회’를 열었다. 1등을 차지한 조수정 씨는 우승 조건으로 앞으로 연예인 활동을 지원받게 됐다. 역시나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그녀의 이름은 ‘순간검색어’에도 올라갔다.

 

수능을 막 치룬 친척동생은 코수술도 해달라고 엄마를 조르고 있는 중이다. 쌍꺼풀 하는 김에 코도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 동생의 이유. 두 개를 동시에 하면 할인까지 된다나? 친척동생은 예뻐져서 꼭 아나운서가 될 테니 한번만 믿어달라며 징징대고 있다. 

 

문득 학창시절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 집 돈 많니? 아님 너 얼굴이 예쁘기라도 하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최고야. 안 그러면 후회한다.”

 

그런데 세상이 바뀐 걸까? 내가 무지했던 것일까? 이제는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그러고 보니 불과 얼마 전까지도 면접에서 번번이 국물을 마셨던 친구가 생각난다. 쌍꺼풀이 없어 강한 외모에 고민하던 친구는 결국 수술대에 올라섰다. 그녀는 결국 원하던 회사에도 입사했다.

 

결국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학생들은 각 학교 별로 얼짱을 뽑아 순위를 매겼고 몸짱 아줌마는 제2의 ‘봄날’을 맞았다. 어느새 뉴스를 전달하던 아나운서들에게도 ‘얼짱 아나운서’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고 네티즌들은 어느 연예인이 제일 동안인지 설전을 벌인다. 그래서인가. 잠깐 쉬다 나오는 그녀들은 깡마른 몸에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지방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선 화면 앞에 나타난다. “감기 때문에 얼굴이 좀 부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그 와중에 한 사람을 만났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향한 노력, 그리고 그 덕분에 더 빛나게 된 재능이에요”라고 속삭이던 그 남자.

 

바로 휴대전화 판매원 출신 오페라 가수 폴포츠다.

 

 

폴포츠는 영국판 아메리칸 아이돌 격의 프로그램인 ITV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 우승자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스타답지 않은 외모로 말이다.

 

폴포츠는 어린 시절부터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늘 주변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 시절 그의 유일한 친구는 ‘음악’과 ‘노래 부르기’였다. 그것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면 못생겨서 놀림 받던 폴포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페라를 부르겠다는 꿈도 그렇게 커갔다.

 

그러나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는 꿈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음반사들은 “목소리는 좋지만 외모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는 대답만 들려줬다.

 

“나의 외모만 보고 무시할 땐 정말 슬펐어요.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기회를 찾아다녔죠.”

이탈리아에 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28세가 되던 해 그는 자비를 들여 이탈리아까지 갔다. 그곳에서 3개월간 오페라 단기과정을 수료했고 영원한 우상 루치아노 파바로티 앞에서 노래할 기회까지 얻었다. 

 

파바로티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영국에 돌아왔지만 악성 종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 후에는 ‘자전거 사고’라는 악재와 만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쇄골뼈가 부러져 2년간 아무 일도 못한 채 재활에 매진해야만 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5천5백만 원의 카드빚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프고 괴로운 사실은 쇄골뼈 골절로 성대를 다치는 바람에 “다시는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그러나 폴포츠는 7전8기의 사나이였다. 그 뒤 휴대폰 외판원으로 일하며 빚을 갚아가고 있던 그는 꿈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elent)’ 오디션이 바로 그것이다.

 

언뜻 봐도 싸구려처럼 보이기만 한 양복, 부러진 치아와 뚱뚱한 몸매. 폴포츠는 오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한 채 무대 위에 올라섰다. “오페라를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그가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르던 순간, 차가운 표정으로 보고 있던 심사위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청객 중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노래가 끝나는 순간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독설만 퍼붓기로 유명한 독설가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 역시 “정말로 휴대폰 외판원이 맞냐”며 “당신은 우리가 찾아낸 보석”이라는 칭찬을 아낌없이 던졌다.

 

“당신은 우리 눈을 확 뜨게 만드는 신선한 공기 같군요”
“우리는 지금 막 다이아몬드를 발견했어요. 지금은 작은 석탄 조각이지만 당신은 곧 다이아몬드가 될 거예요.”

 


이 동영상은 곧 유튜브에 올라갔고 9일 만에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운받았다. 이는 유튜브 사상 최고의 조회수였으며 그는 그렇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놀라운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드디어 평생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요즘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 바로 ‘대중 앞에서 노래를 하는 일’이 직업이 돼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부러진 앞니를 치료해 자신 있게 웃을 수 있게 된 것 역시 최근에 누린 행복 중 하나라고.

 

종양에 걸리고 교통사고로 쇄골을 다쳤다. 다시는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재활 때문에 2년간 일을 할 수 없었기에 빚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게다가 그가 찾아간 음반사들은 외모 때문에 안 된다며 퇴짜만 놓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믿었다.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여지껏 살아왔다. 그렇다. 그의 삶을 지탱해준 원천은 바로 변함없는 믿음뿐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세요. 자신이 생각한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는 이뤄질 거예요. 저처럼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것을 단순히 기적이라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혼이 담긴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는 재능, 마지막으로 ‘노래’ 하나만을 생각한 진심어린 마음. 폴포츠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그의 존재를 알아준 것이 아닐까.

 

아직도 더 예뻐지면 인정받고, 또 사랑받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영원히 빛나지 못하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는 검고 지저분한 석탄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