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쓰는 사람

선이야, 뭐하고 지내니?

헬레나. 2002. 3. 6. 23:54

사범대 학생회실에 가던 도중, 대자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최선 학우가 세상을 떠난지 1주년이 된다는 내용의 대자보. 오늘, 2월 17일은 새터에서 돌아온 다음날이었으며, 선이가 저체온증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작년 17일 새벽 3시 30분 경 화장실에 간다고 나갔던 선이는 그날 아침 10시 경 눈에 파묻힌 상태에서 발견됐다. 발견즉시 급히 병원에 실려갔으나 체온은 오르지 않았고 오후 5시경 결국 저체온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이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잡은 채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 겨울날, 7시간을 혼자 버티면서 선이는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의 모든 원인을 '대학내에 만연하는 그릇된 술문화'가 빚은 참사라고 했다. 그러나 화장실 옆에 철조망이라도 있었다면 선이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화인레스피아'는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 난간을 설치했다고 하니...

 

물론 새터 행사 도중 수련장의 강당이 무너졌는데도 행사를 강행한 학생회와 후배들을 챙기지 못한 선배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많은 잘못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잘못이 그들에게 있는 것은 아님에도 언론의 비난은 그들을 향했다. 그것은 나를 참 안타깝고 슬프게 했다.

 

그 시절, 대학을 갓 입학한 나, 선이를 한번도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교양관 문에 붙어있는 사진 속의 선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대자보를 읽던 중 재수를 해서 고대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녹지운동장의 흙조차 밟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버렸구나. 4.18 구국대장정 때 함께 뛰지도 못하고, 고연전 때 엘리제도 못해본 채. 1년을 다시 공부하면서 캠퍼스가 주는 낭만과 꿈은 그 누구보다 컸을 것이 분명한데도.

 

향을 피우며 사진을 바라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암골에서 그 어떤 시간도 누리지 못한 선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하겠다고.

 

막걸리 세병을 마시고도 토를 하지 못해 뻗은 나를 엎어줬던 선배가 참 고마웠던, 진짜 고대생이 될 수 있었던 ‘사발식’. 막걸리와 김치가 맛있다는 것을 알려준 ‘해오름제’, 우리의 선배들이 어떤 마음으로 거리를 뛰쳐나왔는지 가르쳐준 ‘4.18 구국대장정',

 

과 친구들과 함께 음식 만들며 우정을 키울 수 있었던 ‘대동제 과 주점’(일명 단란주점이라 했던. ^_^), 노천극장에서 바라보던 밤하늘을 수놓던 불꽃놀이와 엘리제, 돌아오는 길 중도관 앞에서 했던 FM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입실렌티 지야의 함성’,

 

흙을 사랑하는 마음, 정이 넘치는 농민의 마음, 그 진실된 마음을 알게해줬던 '여름농활', 중학생들 앞에서 SEX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지만 그래도 성교육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참교육을 느끼게 해줬던 ‘지역학교, 여울에서 바다로’, 좀처럼 스폰을 얻지 못해 나를 울게 만들었던 ‘성북지역 통일마라톤 대회’,

 

녹지 운동장 16바퀴를 뛰며, 앉았다 일어서기 1000번에 지쳐가며 수돗물을 약수물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던 ‘YT 훈련’, 교가를 부르던 도중 대학에서 보낸 첫 여름방학의 고생이 떠올라 단상 위에서 통곡하고 만 ‘고연전’, 신문 뿌리며 학우들에게 투표하라며 뛰어다녔던 ‘선거운동'.

 

지난 1년동안 내가 보낸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선이를 기억하는 날보다 잊는 날들이 더 많았지만, 하늘나라에서 안안골을 내려다볼 선이가 '내가 만약 지금 살아있었다면 너보다는 학교생활 열심히 해냈을 것이야' 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노력은 번번히 실패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뛰어들었다.

 

35대 총학생회 선거 개표날, 34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지은언니와 부총학생회장이었던 우성오빠가 지난 1년을 회고하는 발언을 하던 중 선이 이야기를 꺼냈다. 울먹거리며 말을 잇는 지은언니, 그리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 우성오빠. 그들역시 살아생전 선이를 만난 적도 없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선이 어머니는 지금도 열심히 기사식당을 운영하신단다. 그리고 선이 동생 역시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고. 지난 대동제 때 정경대 학생회에서는 선이 가족을 학교로 초청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얼마전 설연휴때에는 직접 찾아뵈었다고. 돌아오는 8월 13일, 선이의 스물 두번째 생일에는 나역시 뭔가 해줘야겠다. 말로만 끝나지 말고.

 

선이야, 선이야, 요즘은 뭐하고 지내니? 그곳에서 잘지내고 있지? 유난히 볼이 통통했던 사진 속의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잘지내렴. 너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시한번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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