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쓰는 사람

눈물과 함께 끝이 난 고연전

헬레나. 2003. 1. 22. 19:54

고연전이 끝났다. 단장님이 울먹이면서 교가를 부르자고 했고, 학생들이 육성으로 교가를 부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상 위에서 그냥 우는 것도 아니고 엉엉 소리내면서. 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밑에 있던 사람들이 운다면서 쳐다보고 손가락질했지만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우는 의미를 알 수 있었을까?

같이 단상 위에서 함께 있던 친구들이 달래주었고 단상을 내려올 때 기범이 오빠가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르려주셨다. 하지만 대기실까지 가는 순간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아 울면서, 울면서 겨우 겨우 걸어갔다. 대성통곡을 하며 트랙을 걸어가는 나와 은진이를 보면서 고대 학우들은 잘 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왜 우세요, 라는 말을 건내주었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사람도 있었고, 눈물 닦으라면서 휴지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제는 비를 맞으면서 녹지 운동장을 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녹지운동장을 16바퀴나 뛰고 헥헥 거리는 일도, 마지막 2바퀴는 전력질주다! 라는 말에 피가래가 나올 때까지 달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때처럼 운동장에 누워 시체놀이를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달리기 선착순으로 짜르는 기합을 받는 우리를 위해 럭비부 선수들의 힘내세요! 라는 격려를 들을 일도 없을 것이다. 처음 블루 먼스터 동작을 배웠던 날처럼 웃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우리 앞에서 블루 먼스터 동작을 하면서 우리를 웃게 만들었던 현주오빠를 볼 일도 없을 것이다. 오빠는 이제 우리 앞에서 소세지와 환타를 드시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런 오빠에게 소세지 한 조각만요~ 환타 한모금만요~ 하면서 아프가니스판 난민 흉내를 넬낼 일조차 없을 것이다. 너희들 제대로 좀 해봐, 그렇게 밖에 못해? 노래 안불러? 라고 화를 내면서 얼굴을 비비는 오빠의 모습도 이제는 볼 수 없을 것다. 동작에 힘을 줘서 팍팍 하라는 말에 사라진 팔계 오바 동작을 보이던 창희를 보면서 기가 막히지만 그래도 웃기다는 모습으로 웃던 모습 역시.

엔딩 멋있게 잘한다며 칭찬해주시면서 아이스크림 사주셨던 단장님, 집중의 박수로! 고대의 응원은 힘과 절도다! 라고 말씀하셨던 기범오빠, 매일 점심 때마다 오늘의 A코스와 B코스를 가르쳐주던 진보오빠, 앞꿈치 뒷꿈치 하면서 트위스트를 가르쳐주던 애니언니, 쭉쭉빵빵 엘리제의 진수를 보여주던 인덕오빠. 학관에 갈 때면 음료수 병에 물을 따르던 봉신이, 용원이, 치욱이, 제일이, 지혜... 그때의 그 모습은 이미 지난 여름의 기억 속에 묻혀져있다.

어제 일 같지만, 그날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처음 훈련이 끝나고 학관으로 가던 중 응원단 게시판에 적힌 "고연전 D-**일" 을 보면서 우리의 훈련날짜를 생각하며 한숨쉬던 날로부터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제 매일 오후 6시 전에, 깃발을 가지고 녹지에 올라가는 일도 없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800번 넘게 할 일도 없다. 다음 조가 올 때까지 무한반복으로 PT체조를 할 일도 없다. 기합을 받다가 친구들이 호흡을 거칠게 내쉬며 쓰러질 일도 없다. 무한반복으로 내일을 향해를 할 일도 없다. (학우들은 몰랐겠지. 나도 몰랐으니까. 이 응원곡이 힘들다는 사실을. ^^ 하지만 이번 고연전 때 9번인가 했다. --;)

토끼뜀으로 노천극장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올 일도 없다. 훈련시간이 되면 시계를 보며 안오는 친구들 때문에 초조해할 일도 없다. 동기야, 빨리와! 라고 외치며 달리면서 처지는 친구들을 기다릴 일도 없다. 시간 엄수! 라고 외치며 팔굽혀 펴기를 할 일도 없다. 1시간 동안이나 엎드려 뻗쳐를 하며 땀을 흘릴 일도 없다.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한의원에 갈 일도 없다.

동작이 안나와서 훈련이 끝나고 교양관 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동작 연습을 할일도 없다. 집에 가는 길, 연습한답시고 혼자서 투스텝에 팔털기와 어깨털기를 하며 가지 않아도 된다. 엎드려 뻗쳐를 못해 집에서 팔 힘 기른다고 아령을 들고 엎드려 뻗쳐 연습하는 일도 이제는 안해도 된다.

훈련 때 조별로 앉아서 음료수 먹을 일도 없다. 훈련 중간 중간 선배들이 주는 물에 열광할 일도 없다. 쉬는 시간이면 수돗가로 달려가 수돗물을 먹지 않아도 되고, 일부러 그늘에 엉덩이 비비고 앉을 일도 없다.매일 아침마다 맨소래담을 오일처럼 바르고, 압박붕대로 다친 발을 꽉꽉 조여매는 일 역시 이제는 안해도 된다.

그 여름날, 안암학사를 거쳐 학관에서 추리한 모습으로 밥을 먹던 나를 보며, 고등학생이 여기는 왜 왔냐는 학우들의 중얼거림을 들을 일도 없다. 체크바지와 벙거지 모자를 쓸 일도 없다. 훈련이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었던 떼르그 글라스의 과일 빙수, 내년 여름에 또 먹는다고 해도 그 맛은 훈련 때 먹던 그 맛이 아니겠지.

조명 아래서,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할 일도 없다(다들 기억하는지? 민철오빠와 함께 했던...^^) 고래사냥과 엘리제의 순간동작을 위해서 팔을 뻗은 채로 멈춰있는 그 상태가 힘들어 괴로워할 일도 없다. 깃발 연습을 하면서 제대로 못한다고 야단 맞을 일도 없다. 허벅지와 무릎이 아파 팔도 누르면서 동작을 할 일도, 계단을 내려갈 일도 없다. 훈련 때 입는 츄리닝을 입고 수업을 들을 일도 없다. 녹지 운동장에서 다함께 얼싸안고 울 일도 없다. 그리고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털면서 2만 학우들 앞에서 응원할 일도 없다.

그렇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일보다 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맞았던 고연전. 펑펑 울면서 눈물을 흘리며 끝마친 고연전. 그리고 그날 흘렸던 눈물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던 여름 훈련.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말밖에 하지 못한다. 잊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잊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슬퍼하면 안돼. 마지막 당부는 슬퍼하지 말자는 거야. 라던 기장오빠의 말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바란다. 지금의 이 슬픔과 아쉬움이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될 수 있기를.

 


유난히 얼굴이 하얗던 YT였던 나... 머리까지 노래 러시아 사람같았다고 놀림받았던 그때... 야구장 게이트 치기 바로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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