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쓰는 사람

제발, 살 수만 있다면

헬레나. 2002. 3. 17. 12:01

"기사 하나 써줄 수 있어요?"

 

취재점검하러 들린 법대학생회실에서 법대 학생회장님은 내게 그리 말했다. 법과대 99학번 김남호라는 학우가 많이 아프다고.

 

법관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한 젊은이가 자금 병마와 맞서 힘들게 싸우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남호(법과대 법학99)군. 김남호군은 지난해 8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M3병' 이라는 진단을 받고, 현재 강남성모병원에서 투병 중이었다.

 

어렵사리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고, 병원 측으로부터 취재 허락을 받았다. 취재 전 그가 현재 항암치료를 3차까지 받았으며 지금은 중단한 채 회복을 기다리고 있지만, 몸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아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울면 안되는데, 울면 안되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학교에서 출발했다. 하늘은 흐렸고 이내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병원 총무처에 근무하는 직원과 함께 조혈모 병동으로 갔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빨간 글씨가 새겨져 있는 문을 열고 손과 카메라를 소독하고 마스크와 모자를 썼다. 8명이 함께 쓰는 병실 안에 김남호 군이 있단다.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단 10분만의 면회만 허락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누워있던 김남호 군이 보였다.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한 뒤 사진을 찍었다. 항암치료가 중단된지 두어달이 지난 뒤라 생각보다 많이 힘든 모습은 아니었다. 머리도 조금 자라있었고, 무엇보다 눈빛이 맑고 또렸했다.

 

렌즈를 통해 보이는 그의 눈빛은 내 마음 속 모든 거짓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나는 그 눈빛 때문에 움찔했다. 그의 눈빛은 힘든 상황에도 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남호군은 그동안 계속된 항암치료의 영향으로 골수 내 모든 세포가 파괴돼 자가 조혈모 세포 이식술이 불가능하며, 회복할 때까지 혈소판을 일정 이상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수혈을 받아야하는 상태다. 다행히 군부대 사람들 덕분에 지속적인 수혈 지원은 받고 있다. 게다가 같은 동종골수 이식 대상자를 확보했다. 이제 수술만 받으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골수이식을 받는데 필요한 수술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수술시 필요한 돈은 최소 1억여원이다. 병원 측에서는 7천만 원까지 만이라도 준비한다면 수술을 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 김종연(남·48세)씨는 충남 공주시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지난 1년 간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까지 팔은 상태라 더 이상 수술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본교 학생들이 뜻을 모아『김남호 학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모금운동을 하고 있지만 모금액 현황은 약 1천만 원 가량밖에 되지 않아 수술비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담당의사인 고명범(남·29세)는 "수술을 받는다고 금방 좋아질지 여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한다" 고 말했다.

 

지난 해 법대에서 헌혈 차를 불러서 헌혈증을 모아주는 등, 잘 모르는 사람까지 자신을 많이 도와주는 것에 감사한다는 남호 군은, 다시 건강해지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공부를 하고 싶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취재수첩에 적자 남호군은 "어? 방금 한 말 신문에 실을 거죠? 그러면 그 말 취소예요. 몸이 나으면 극장에 가서 영화보고 싶어요, 로 바꿔주세요~" 라는 재치까지 발휘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힘든 삶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낙천적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남호군은 지난 2001년도 1학기를 휴학하고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던 중,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병원에 갔다고 한다. 당시 병원 측에서는 기관지염 판정을 내렸고, 1달이 넘게 감기약을 복용했다. 그러던 여름, 아침에 일어나서 발을 딛는 순간, 중심을 잃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다리에 혈종이 생겨 걸을 수가 없었던 것. 병원 측에서는 이상하게 여겨 정밀검사를 의뢰했고, 그날 남호군의 병명은 기관지염에서 백혈병으로 바꿨다.

 

어머니는 그 당시 이야기를 하며,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상태를 정확하게 알았다면 지금 치료를 받으면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했다. 법관이 돼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며, 착하게 자란 내 아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이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에게서도 실질적인 재정도움은 얻지 못한 상태고, 수술은 빨리 해야한다. 그 많은 고대생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안암골에서 공부하던 청년이 못다 이룬 꿈을 가슴에 고이 안고 안암의 언덕을 떠날지도 모른데. 우리가 한끼 굶어 모은 돈 3000원을 2만 고대생이 남호군을 위해 모금한다면 금새 7000만원이 되고,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을텐데. 하지만 세상은 생각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그런 가벼운 수적 논리로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슴이 참 답답하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던 길에 그에게 물었다. 여자친구 있어요? 아직 없다는 대답에 몸 나으면 정말 좋은 사람, 제가 소개시켜줄게요, 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간절히.

 

병원을 나서던 중,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 서서 오래도록 기도했다.

 

도와주실 분: 서울은행 30004-1567415(예금주-박영곤 김남호 학우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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