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있던 방

정신없었던 한주를 보내며

헬레나. 2003. 4. 5. 02:46

다음주 월요일에 나올 신문을 만들며 홍보관에 갖혀 있다. 이번주도 정신없이 보냈다. 기운이 다 빠져 머리마저 아픈 새벽이다.

 

새벽 2시. 편집국장실에서 근호형은 잠시 쉬며 한게임 고스톱을 하고 있고, 희선언니와 민욱이, 상현이는 맥 앞에 앉아있다. 난 일이 다 끝났지만 충무로 인쇄소에서 최종적으로 확인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신문사에 있다.

 

물론 머리가 아파 집에 가고 싶지만, 홍보관 문이 잠긴 상태이므로 갇힌 상태다. 나가려면 2층 창문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내려야한다. 목숨을 걸고 뛰어내려야지만 약 10분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을 견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현이 컴퓨터에서는 러브 인 맨하탄에 실린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재즈 풍의 음악들. 이런 밤에 참 어울리는 곡들이 편집실을 메운다. 이 순간만큼은 내 머리를 감싸고 있던 두통들이 사라진다.

 

"당신에게 못한 말이 있어요. 있잖아요,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너무나 매력적이었소."

 

분수대 앞에서 뛰어가던 마리사를 잡고 키스해주는 마샬.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계절조차 알 수 었던 어느날, 사랑은 시작된다.

 

맨하탄에서의 사랑이라. 뉴욕이라는 공간은 인종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존재할 것 같다. 왜냐하면 뉴욕이니까. 뉴욕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리라. 내게 있어선 꿈과 낭만이 존재하는 마법의 도시이므로.

 

영화를 보기 전, 동인이에게 전화가 왔다. 뭐하냐는 질문에 러브 인 맨하탄을 보러 종로에 왔다고 답했다. 무슨 영화인데? 응, 사랑영화야. 우중충하게 무슨 사랑 영화는 사랑영화냐? 우중충하다는 단어 때문에 차마 혼자서 보러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혼자다. 나는 다시 또 혼자서 영화를 보러 다니기로 결정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누군가와 같이 보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생각으로만 끝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기다리다 끝나다. 그런 것들 이제는 그만.

 

최근 몇 일동안 기분, 참 우울했다. 혼자 국장실에 앉아 예전 고대신문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아주 두꺼운 사진집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사진 한장 제대로 못찍는 넌 바보야, 이 바보야.

 

내 밥그릇 못챙겨먹는 나는 정말 바보다. 조금 귀찮고 힘들더라도 내 밥그릇을 챙겨먹어야할까? 아님 조금 편하게 남이 먹다 남긴 밥을 먹으며 배를 채워야할까?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지금, 다소 지쳤다는 이유로 후자의 삶을 살고 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내가 찍은 필름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코메디다. 항상 뭔가 모자르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내가 찍은 세상은 언제나 꽉 차있다. 막혀있고, 숨쉬기조차 힘들다.

 

한때 정말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질문을 필름을 바라보며 다시 해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니?

 

you and you. me and me.

마샬이 마리사에게 했던 그 대사처럼 생각해보자꾸나.

 

사랑합니다.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나를. 사랑합니다. 지금의 내 삶을. 나는 더없이 사랑합니다. 그러니 좌절하지 마세요. 부디 슬퍼하지 마세요.

 

비오는 여름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지금. 당신도 그렇죠?

상당히 헬레나틱하게 찍은 사진. 요즘들어 사진을 너무 답답하게 찍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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