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있던 방

자전거 탄 풍경

헬레나. 2003. 2. 11. 00:22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 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너에게 난 해질녁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겐 넌 초록의 슬픈 노래로
내 작은 가슴 속에 이렇게 남아
반짝이던 너의 예쁜 눈망울에
수많은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너에겐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자전거 탄 풍경 1집 중, 너에게 난, 나에게 난 중에서.

 

영화 클래식에는 비오는 장면이 참 많이 나온다. 영화를 본 누군가는 곽재용 감독이야말로 대한민국 감독 중 비를 가장 사랑하는 위인일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는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나고 과언이 아닐정도로 영화 내내 스크린 속 필름 안에서는 비가 쏟아진다.

 

클래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참 많지만, 영화를 본지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까지 생각나는 장면이 딱 2개 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피할 곳을 찾던 지혜(손예진). 머리와 옷에 묻은 물기를 훔치고 있을 때, 자신이 좋아하던 연극반 선배 상민(조인성) 이 뛰어오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녀,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똥그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돌리게 된다면, 그리하여 그 눈을 보는 순간 다시 사랑에 빠질테니.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 또 그런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 이제는 잊으려고 하는데 왜 또 이렇게 나타나는 것인지. 왜 또 만나게 되는 것인지. 조용히 나무 뒤로 사라지려는 순간 상민이 말한다. "지혜니?"

 

"어디가는 중이니?"
"아, 저 도서관 가려구요."
"꽤 멀구나. 우산도 없는데."

 

이름모를 나무 밑에서 도서관까지 뛰어간다. 꽤 먼 길, 중간중간 보이는 건물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한 채 다시 뛰어간다. 상민선배 쟈켓을 함께 뒤집어쓴 채로. 뛰어가던 지혜의 콧가에는 선배냄새만 날 것이다. 좋은 냄새. 두 눈을 감아도 느낄 수 있는 그 냄새. 참 좋은 냄새.

 

함께 뛰어가며 쉬던 그 건물들. 어딘가에서 많이 봤던 영화 속 건물들. 이제는 아는 사람도 없어 더이상 놀러갈 수 없는 내 기억 속, 그 학교 건물들.

 

선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도서관 2층 창문 틈으로 뛰어가는 상민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지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선배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한 손에는 그의 우산을 들고 백양로를 뛰어간다. 그녀, 치마를 입어 더 빨리 뛰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것이다. 딱딱딱. 1초의 늦음이 순간의 기다림으로 다가올 것이라.

 

뛰어가던 길에 보던 학군단 청년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수경례를 한다. 그 경례가 화답하는 지혜. 비라도 그치게 할 것 같은 웃음을 짓는 지혜.

 

이 두 장면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비오는 장면이라는 것. 그리고 그 장면에 자건거 탄 풍경이 부른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이라는 곡이 흐른다는 것.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행복해진다. 자전거 뒤에 타라며 웃던 그 모습이 생각나서. 그 밤, 허리를 꼭 잡고 있던 자전거 뒤 내 모습이 생각나서. 텅빈 캠퍼스에서 나던, 그곳을 뒤덮던 여름 풀냄새, 초록나무냄새가 생각나서.

 

기타가 배우고 싶어지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은 기타가 어울리는 곡이므로. 아니, 그보다 더 하고 싶은 것은 언젠가 만날 그 사람 손을 잡고 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

 

번외)
나중에 내가 비를 맞으며 사대신관을 나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잠바 밑에서 비를 피하라며 웃어줄 사람이 있을까?

 

아니다. 연대가 아닌 이상 그런 상상은 그저 낭만적 상상일 뿐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집에 가는 길에 비가 쏟아진다면? 사대신관에서 사대본관으로 간다. 두 건물은 연결되있다. 그 다음 사대본관에서 경영구관으로 간다. 가는데 30초 안걸리는 위치에 있다. 경영구관에서 제2경영관으로 간다. 역시 두 건물은 연결되있다. 그리고 제2경영관은 종합생활관과 연결되 있으며 종합생활관 지하에는 지하철이 있다. 비 안맞는다. ㅠ.ㅠ

 

다음으로 신문사가 있는 홍보관까지 가는 길. 일단 사대신관에서 다람쥐길까지 뛰어간다. 1분도 안걸린다. 다람쥐길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자신들의 나뭇잎으로 하늘을 가려준다. 비, 드문드문 잎 사이로 떨어진다. 거의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람쥐길에서 홍보관까지 가는데 역시 1분도 안걸린다. 그 1분동안 맞으면 또 얼마나 맞겠는가. 가방으로 가리고 뛰어가면 된다. 현실은 이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혹, 또 몰라. 일부러 중앙광장까지 내려가서 정문 앞으로 해서 민주광장을 경유해서 홍보관까지 간다면 비 참 많이 맞겠지. 또한 고려대 역이 아니라 안암역으로 가게 되면, 앞서 말한 중앙광장을 경유해서 민주광장의 그 유명한 정대언덕을 지나 후문까지 가게된다면, 원하던 대로 쫄딱 맞을 것이다. 왜 쫄딱 맞냐고? 내가 아무리 그길로 가더라도 영화에서처럼 같이 뛰어가자며 쟈켓을 벗을 남자는 없기 때문. ^^;; 물론 진정 비를 맞고 싶다면 인문계 캠퍼스에서 자연계, 애기능 캠퍼스로 가던지 아님 녹지 캠퍼스로 가면 된다. 그러면 비, 정말 원없이 맞으리라! ^^;;;

 

사실 원래 고등학교 시절 꿈 중 하나는 학군단 남자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학군단 친구들 넘치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어쨌건 그들도 내 남자친구이지 않는가. 꿈과 비스무레한 삶을 살며 만족하는 나. 새학기에는 내 학군단 친구들이 거수경례나 해줬으면 좋겠다. 얘들아~ 특수체육론 시간 때 기대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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