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ootball

그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헬레나. 2006. 11. 10. 02:41

 최철순의 발에서 떠난 공은 일본 골키퍼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던 최철순의 표정을 보며, 그 뒤로 기뻐 날뛰는 일본 선수들을 보며, 아시아청소년대회 3연패의 꿈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경기 중간 중간 안 풀린다며 한숨을 휴, 내뱉던 상호은 어느새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녀석, 꼭 우승컵 안고 온다고, 주영이 형처럼 웃으면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인터뷰 때문에 인도로 떠나기 전날 파주에서 만났을 때도, 비 많이 오는데도 와서 고생하고 간다고 오히려 내 걱정해주던 착한 아이였는데. 워낙 욕심 많은 아이인지라 노력도 많이했고 그걸 잘 알기에 청소년대표팀의 새로운 스타가 되길 바랬다. 녀석, 아마 내일 아침이 올 때까지 제대로 자지 못할 것 같다. 분명.

 

 김동석의 프리킥으로 2대 2 동점이 됐을 때, 나는 지난 대회를 생각했다. 그때도 똑같은 상황이었지. 주영이의 동점골로 연장까지 갔고, 연장에서도 결국 승부를 내지 못해 승부차기까지 갔던 그날. 물론 그때승부차기 실축자는 주영이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운이 그리도 안 따랐는지 심영성, 이상호, 김동석, 그리고 최철순, 이렇게 믿었던 선수들 모두는 실축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말았다.

 

 그날, 주영이는 실축 후 대열로 돌아와 우리나라의 결승진출이 확인되는 순간까지 무릎을 꿇은 채 기도했다. 마지막 키커였던 김진규가 그를 일으켜세울 때까지. 그 모습을 집에서 보고 있던 나는, 아무래도 그곳에 가야한다는 알 수 없는 부름을 느꼈고, 다음 날 말레이시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그리고 이틀 후, 나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공항에 서 있었다.

 

 그냥, 2년 전 그날이 생각나더라. 우승 후 기뻐하는 선수들 틈에서 조용히 손을 내밀었지. 우승 축하해, 라고. 우리를 감싸던 뜨거웠던 10월의 바람. 그 바람은 꽤나 뜨거웠고. 우승의 기쁨과 환희가 어우러진 열기 때문인지도 몰라. 아직도 내 감각은 그날 밤을 기억하고 있지만, 이미 그날로부터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순수함을 다시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오늘 경기 전반 내내 장대비가 잔디 위로 쏟아졌고, 그 때문에 아이들은 진흙탕 속에서 유격훈련이라도 받은 군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누군가는 온몸에 머드팩 한 거 아니냐며 웃었지만, 지켜보는 내게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던 농담이더라. 그만큼 아이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몸을 던져가며 뛰었다.

 

 바로 전날 새벽, 전북현대의 동화 같은 역전 드라마에 감동하며 기뻐했고, 그 행복한 드라마가 오늘 다시 재연되길 바랬다. 누군데 여기 파주까지 오신 거예요? 라고 장난치며 묻던 녀석들의 개구진 표정을 다시 보고 싶었건만. 조수혁 골키퍼의 그 웃음을 마지막에 다시 한번 보고팠건만.

 

 사실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늘 뉴스의 촛점에서 빗겨가 있었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야 흥이라도 날텐데 기자들조차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니 뛰는 입장에서는 속상했을 법도 하다. 아무리 돌풍을 일으키는 대형 선수가 없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돌아오는 인천공항에서는 수많은 기자들과 팬들 앞에서 웃으면서 "저희 청소년 대표팀 많이 사랑해주세요." 라고 말하길 소망했다.

 

 난 그들이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우울한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카메라 앞에 서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앞으로 뛸 날들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는데, 이렇게 질 때마다 고개 숙인 채 있을 것인가. 당당한 모습이 보고 싶다. 가장 스무살다운 모습으로. 그리고 그 모습이야말로 청소년대표팀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아니던가. 그러기에 지금 이 밤,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존경이라는 이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