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속바다,혹은별들

트라우마

헬레나. 2007. 4. 2. 04:43

 어제 저녁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가 실렸다는 걸 알려주려고 일부러 전화한 건데 후배는 받지 않더라. 요즘 가뜩이나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힘들어하는 것 같았는데 나까지 이렇게 전화를 해댔으니 피곤할 수밖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그 순간 심장이 이내 곧 터져버릴 것처럼 쿵쿵쿵 뛰고 말았으니까.

 

 마치 외눈박이 거인이 정신없이 뛰는 것처럼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순간 이러다 터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3년이나 흘러버려 잊은 줄 알았던 옛 기억이 툭, 하고 떠올랐다.  

 

 혼자 울며 거리를 쏘다니던 어느 여름 늦은 저녁 우리의 관계는 끝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냉정한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홀로 절망 속에서 울었다. 잔디에 앉아서 나눴던 이야기들, 중앙광장의 잔디냄새, 녹지운동장의 바람, 놀이터 그네를 밀어주던 손끝과 택시 안에서 말없이 내 손을 만지던 엄지손가락을 떠올리면서.

 

 이제는 잊은 줄 알았던 그때의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긴 밤, 나는 자지 못했다.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려 눈물 따윈 더이상 나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울어버리는 바람에 온 몸에 힘이 다 빠지고 말아 아무 것도 못하던, 그때의 내가 떠올라 나는 아주 잠시 슬펐다.

 

 그렇지만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그날 이후로 끝날 거라고만 생각했던 우리의 만남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참 신기하지? 인연은 이제 끝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만나고 있다. 물론 잦은 마주침 속에서도 그저 애써 서로를 모른 척 할 뿐이지만.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서로를 외면 할 것이 분명하다. 아직 웃으며 인사하기엔 서로를 용서하지 않았고 또 그런 아량을 갖기엔 우린 아직 어리니까.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워지는 까닭은 어쩜 잊어야할 것, 외면해야만 할 것들이 늘어만 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내 부덕의 소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찌하랴. 내가 걸어야할 길인데. 그것이 곧 내 삶인데. 그러니 사랑해야겠지 그리고 살아야겠지. 그 누구도 대신 사랑하며 살아줄 순 없는 거니까.

 .

 .

 .

 그러니 안녕, 스무살.

 .

 .

 .

 나는 그저 잘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성공을 위해 네 스스로 버린 청춘을 생각하면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까워서. 그저 마음 아파서.

 .

 .

 .

 내가 세상에서 제일, 그것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것은 내 마음이 오해받는 것. 그리고 외면받는 것. 그저 받기만하고 진심으로 고맙다,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언제까지 잘해주긴 힘든 거니까.

 .

 .

 .

 그러니까 이제 안녕.  

 .

 .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조용히, 너의 성공을 지켜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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